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인공낙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논설위원, 클래식 음악과 문화예술 강연자, 축구 칼럼니스트 등 현대의 문화예술과 인간적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가르쳐온 정윤수는 이 책에서 광장, 극장, 모델하우스, 모텔, 카지노 등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현대의 유적, 도시의 인공 공간을 탐사한 기록을 담았다.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도시 공간과 그 안에 담긴 삶의 모습을 저자가 직접 찾아가 10년 동안 꾸준히 취재한 것으로, 그동안 미묘하게 변화된 도시의 인공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의 삶과 표정이 담긴 이 책을 통해 한국 도시 공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을 만나본다.
저자 : 정윤수
저자 정윤수는 1967년 1월,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서 태어났다. 1994년 문화비평지 《계간 리뷰》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이후 지금까지 현대적 삶과 그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써왔다. 현대의 일상문화 표층 위로 나타난 다양한 현상들을 두루 살펴서 그 수면 아래에 어떤 본질적인 원인과 심층적인 연관이 뒤엉켜 있는지 궁구해왔다. 2003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논설위원 및 문화스포츠 담당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2005년 인문예술단체 풀로엮은집의 사무국장을 지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계기로 축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축구장을 보호하라』를 썼으며, 클래식을 포함한 근현대 문화예술에 대한 강의를 바탕으로 『클래식, 시대를 듣다』를 펴냈다. 최근작 『인공 낙원: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은 광장, 극장, 모델하우스, 모텔, 카지노 등 우리의 삶이 퇴적되어온 현대의 유적, 도시의 인공 공간을 그가 직접 발로 뛰며 탐사한 성찰의 기록을 담고 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에서 현대의 문화예술과 인간적 삶의 가능성에 대해 공부하며 가르치고 있다.
저자가 속한 분야
* 서문
* 광장, 일그러진 구경거리와 균형 잃은 삶
유럽의 도시와 광장 | 광장의 역사와 문화 | 광화문광장? 거대한 중앙분리대 | 인위로 급조한 광장 | 인간 중심의 광장? | 역사문화 체험 공간? | 광화문광장에서도 사랑이 가능할까?
* 극장, 판타지 너머의 현실
극장 구경을 하러 갔다 | 극장 연대기 | 인공 공간의 핵심, 멀티플렉스 영화관 | 하나의 새로운 시작, 새로운 세계에서 시작 | 이제, 깨어날 시간이다
* 모델하우스, 가설무대의 삶
모델하우스를 찾아서 | 옵션 상품입니다 | 모델하우스의 변천 | 모델하우스, 심미적 전략 공간 | 아파트, 가설무대의 삶
* 모텔, 최후의 망명지
모텔, 욕망의 비상구 | 모텔을 찾아 나서다 | 여인숙에서 모텔로 | 천, 천, 히 변해온 사랑의 무늬 | 군더더기 없는 사랑법
* 백화점, 욕망의 진앙지
압도적 크기, 또 하나의 ‘세계 최대’ | 층별 배치를 뒤바꾸다 | 쇼핑+휴양+문화 | 백화점, 욕망의 용광로 | 새로운 도시의 문화 공간
* 카지노, 폐광지의 불야성
오후 3시, 영월에서 사북 사이 | 오후 4시 30분, 사북 | 백색의 계엄령 | 오후 6시, 강원랜드 카지노 | 오후 11시, 카지노 객장 | 새벽 2시, 고한역 | 오전 11시, 옛 동원탄좌 |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 테마파크, 웰컴 투 원더랜드
플라스틱, 놀이터 그리고 테마파크 | 웰컴 투 테마파크 | 월미도의 스산한 바람 |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절망을 버릴지어다 | 최초의 테마파크는 디즈니랜드 | 국내 최초의 워터파크 | 카리브해의 거대한 모사품 | 신성과 자연성이 거세된 인공의 바다
* 경기장, 그 많은 ‘개인’들의 용광로
망각의 운명으로 사라져버린 동대문운동장 | 축구, 월드컵 그리고 스타디움 | 방패연, 돛배 그리고 소반 | 검이불루 화이불치 | 21세기형 복합 문화 공간 | 창의와 열정의 공간 | 꿈의 구장, 꿈의 향연
* 박물관, 유한한 삶과 영속의 시간
용산, 경제와 군사의 요충지 |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는 길 | 박물관, 민족의식의 전시장 | 몽유도원도, 찰나에서 영속으로 | 몽유도원도와 강산무진도
* 공항, 해체된 시간과 재구성된 공간
오차 없이 구성된 인공 공간 | 직선과 속도의 공간 | ‘편리하고 쾌적한’ 인공 도시 | 공항, 무국적의 비장소 | 활주로, 창공, 관제탑 | 인공과 낭만 | 직선을 거스르는 회항
* 기차역, 식민의 기억과 현대의 속도
기차, 소리들 | 서울역, 그리고 대우빌딩 | 서울역, 개찰구 앞에서 | 기차, 근대의 추억 | 경성역, 이식된 제국주의 | 서울역, 공간의 재편 | 다시, 서울역 푸드코트에서
“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삶의 거푸집으로 존재하는
거대 도시의 인공 공간들에 대한 내밀한 성찰의 기록이다.
급변하는 대도시, 날로 비대해져가는 메트로폴리스,
맹진하는 속도와 휴식 없는 노동과
번들거리는 물신의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무국적의 글로벌폴리스.
과연 이 변화는 무엇이며,
이 속에서 건사되는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서문〉중에서
우리의 삶이 퇴적되어온 현대의 유적, 도시의 인공 공간
문화평론가 정윤수가 직접 보고 느끼며 발굴한,
한국 도시 공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도시는 거대해졌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인공 공간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점점 주눅 들고 있다. 광화문광장을 비롯하여 도처에 ‘구경거리’가 늘어나지만 하나같이 키치적인 ‘관상용’으로 조잡하게 배열될 뿐이며 그 사이로 한낮의 소일거리를 찾아 나선 인간은, 풍경이 영혼 깊숙이 드리워지는 본질적인 위로를 얻지 못한 채, 그저 인증샷을 찍고 돌아선다. 경관이 해체되고 풍경이 사라지고 그 속에서 애틋하게 이뤄졌던 사람살이의 인연마저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말끔히 정제되고 마는 거대 도시의 인공 공간! 우리에게 과연 인간적 삶이란 가능한가?” -〈서문〉중에서
거대한 도시 공간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일상의 풍경은 자연의 것이기보다는 인공의 구조물인 경우가 많다. 줄지어 선 빌딩 사이를 거닐고, 인공의 공간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일하고 노는 도시인들, 심지어 떠나고 도착하는 터미널도 인공의 공간으로 귀결된다.
이렇듯 언젠가부터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든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졌고, 대부분의 기억과 추억도 공간이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 역시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며, 자신만의 생사고락을 써나가고 있다. 도시는 그렇게 공간의 역사를 품은 거대한 이야기책이 되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이러한 현대 도시 공간의 모습을 ‘인공 낙원’이라 칭하며, 같은 제목의 책을 펴냈다. 도시 공간은 우리의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는 동시에, 벗어나고 싶다가도 속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낙원의 모습으로 우리를 감싼다고 그는 말한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논설위원, 클래식 음악과 문화예술 강연자, 축구 칼럼니스트 등 현대의 문화예술과 인간적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가르쳐온 정윤수는 『인공 낙원: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광장, 극장, 모델하우스, 모텔, 카지노 등 우리의 삶이 퇴적되어온 현대의 유적, 도시의 인공 공간을 직접 발로 뛰며 탐사한 성찰의 기록을 담았다.
그동안 건축과 공간에 대한 다양한 책이 나왔지만, 저자는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우리만의 도시 공간과 그 안에 닮긴 삶의 궤적을 담고자 하였다. 이 책에는 건축물을 그럴싸하게 담아낸 포스터 같은 사진이 없다. 그가 직접 찾아가 인간의 눈높이에서 살아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들이 전부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있고 일상의 풍경이 시큼할 정도로 꾸밈없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위해 근 10년 동안 꾸준히 취재하고 사진을 찍은 만큼, 그동안 미묘하게 변화된 도시의 인공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 모습이 잘 포착되어 있다.
20세기를 마치고 21세기에 접어들어 거침없이 그리고 정신없이 달려오던 우리의 삶과 표정이 담긴 책,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한 기록을 펼친 진귀한 책이기도 하다.
환호와 환멸이 공존하는 열한 곳의 인공 낙원을 찾아가다!
도시는 거대해졌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여기 이곳에서, 우리에게 과연 인간적 삶이란 가능한가?
저자는 총 열한 곳의 거대 도시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안에 크고 작은 공간들을 포함시켰다. 인간적 호흡이나 관계가 끊어지고 새롭게 조성되는 거대한 인위적 공간들, 광화문광장이나 인천공항 같은 시대의 랜드마크부터 아파트 모델하우스, 백화점, 테마파크, 카지노, 모텔처럼 도시인들의 이런저런 욕망이 맞닿은 공간과 함께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는 ‘나’를 둘러싼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해,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도시 공간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묻는다.
광장, 일그러진 구경거리와 균형 잃은 삶 - 광화문광장
광화문 앞에 새롭게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당위를 들며 추진되었다. 저자는 건널목을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광장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광화문 앞까지 ‘걸어가도록’ 조성된 공간을 살펴본다. 왕이 다스리던 시절을 복원하고 싶은 이곳은 시민을 위한 곳이 아닐 때도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주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은 광화문광장을 사전에 장악한다.
지하철로 이어지는 해치마당에는 서울시의 홍보물이 쉴 새 없이 영사되는 이곳,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허가’의 공간으로 보고 있다. 시민이 모이는 ‘아고라’가 아닌 ‘국가 상징의 공간’이 된 광화문광장.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광장으로 들어서 땅에 키스를 한다면 경찰에게 제지를 당할지도 모르는 곳이다.
“광화문광장이 ‘국가 상징의 축’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그 안의 조형물과 이벤트는 프레임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시선과 이미지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국가 상징’에 부합하는 조형물과 이벤트만이 허용되는 관제 광장, 시민의 일상 공간이 아니라 ‘국가 상징의 축’으로 기능해야만 하는 광장, 그것이 광화문광장의 일그러진 운명이다.”
극장, 판타지 너머의 현실 - 단성사, 명보극장에서 메가박스, CGV까지
저자에게 극장은 특별한 공간이다. 젊은 시절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학교를 벗어난 그는 산재된 극장들을 기점으로 도시를 순회하던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보아온 극장의 연대기를 이 책에 펼쳐 보인다. 단성사,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서울극장 같은 단관 개봉관들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사라졌거나 나름의 변신을 시도하였다. 극장은 이제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다. 소비하고 산책하는 경로의 중심에 위치한다. 오늘날 도시의 극장은 쇼핑몰 안에 있는 인공의 낙원이다.
“오늘날 극장은 거대한 복합 쇼핑몰 안에 위치하여 대도시 관객의 일상 시간을 끝없이 확장한다. 멀티플렉스의 동선은 일체의 ‘외부’를 허용하지 않는다. 복합 쇼핑몰의 식당, 게임장, 쇼윈도, 카페 등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한 세대 전에 사람들은 영화를 본 후 공원이나 거리를 산책했다. 그런데 이제는 거대한 쇼핑몰 안에서, 쇼윈도 사이로, 산책한다.”
모델하우스, 가설무대의 삶 - 한강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래미안 갤러리까지
한국에서 중산층이 또는 중산층이 되려는 이들이 가장 욕망하는 것은 아파트다. 그 꿈의 견본품은 도심이든 외곽이든 절묘한 곳에 세워져 사람들을 유혹한다. 모델이 된 집. 모델하우스다. 1969년 서울 한강변 동부이촌동 한강아파트부터 시작된 모델하우스는 이제 래미안 갤러리, 힐스테이트 갤러리, 자이 주택문화관, 두산 아트 스퀘어 등으로 진화하였다. 그사이 아파트는 1차, 2차를 달던 이름에서 진달래, 개나리, 달빛이라는 수식어를 이용하다가 이제는 푸르지오, 래미안, 자이 같은 브랜드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저자는 화려한 모델하우스의 정면으로 들어가서 가건물의 외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뒷면으로 나온다. 어느 모델하우스든지 그 주차장은 한적하여 쓸쓸한 모습이다.
“대도시의 네거리마다 요란한 치장으로 서 있는 모델하우스는 한곳에 정박하지 못하고 끝없이 떠도는 우리 삶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모델하우스는 그 자체가 임시 가설물로 언제든지 쉽게 짓거나 철거할 수 있고 다른 벌판으로 손쉽게 이전할 수 있다. 가설무대의 삶! 오늘도 ‘낙원구 행복동’에는 모델하우스가 창궐한다.”
모텔, 최후의 망명지 - 신촌 여인숙, 해운대 모텔촌, 화곡동 테마모텔
모텔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음습한 곳이 아니다. 연인들이 올린 모텔 사용 후기를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직접 찾아가본다. 불야성의 모텔들이 번창한 화곡동 모텔촌. 홀로 방문한 모텔은 대형 텔레비전과 커플을 위한 두 대의 컴퓨터가 있다. 어두운 골목길의 여인숙과 다르게 오늘날의 모텔은 쿠폰 적립이 가능한 누군가의 인공 낙원이다.
“남루했던 여인숙이나 장급 여관이 모텔로 바뀌고, 다시 ‘부티크텔’이니 ‘럭셔리텔’ 같은 이름으로 새 단장하면서도 도심지의 숙박 시설은 ‘테마형 문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모텔은, 불가피한 격정에 시달리다 못해 간신히 찾아가는 도피처가 아니라 열정의 순간들을 맘껏 소비하는, ‘강박증’을 벗어던지고, 쾌적하고 고급스런 레저 공간이 되고 있다.”
백화점, 욕망의 진앙지 - 해운대 센텀시티
백화점은 팔기만 하는 공간이 더 이상 아니다. 되도록 그곳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며, 끝내 방문자가 소비하게끔 유도하는 도시 안의 도시다. 저자는 부산 해운대구에 들어선 세계 최대 백화점 센텀시티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첨단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온 해당 지역의 장소성을 말끔히 지우는 데는 그 위에 자본과 지방 정부와 소비의 욕망이 뒤엉킨 초대형 초고층의 물신이 들어서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래서 재개발의 중심에는 언제나 백화점이 들어섰다. 백화점은 인공 낙원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세운 성주의 성이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온 각 지역의 장소성은 사라지고 지방 정부와 자본과 소비 욕망이 뒤엉킨 초대형 초고층의 쇼핑몰이 들어서고 있다. 그 물신은, 너무나 압도적이며 노골적이다. 현대 도시의 인간은, 거대한 소비 공간의 ‘바깥’에서 살아가는 게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카지노, 폐광지의 불야성 -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강원도 정선.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욕망의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이 있을까. 깊은 밤 카지노 객장을 찾은 저자는 ‘무표정한 긴장’이 서린 그곳을 벗어나 근처 고한역으로 가본다. 그곳에는 빈털터리가 되어 오갈 데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누워 있다. 폐광된 탄광촌들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조성될 계획이 수립되어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것은 거리에 늘어선 네온사인들이다. 그리고 강원도는 이제 평창을 중심으로 동계 올림픽을 준비하는 또 다른 희망에 차 있다.
“해발 1,200미터 이상의 옛 운탄길 저 아래로 강원랜드의 스키장이 있고 골프장이 있고 카지노가 있다. 또 그 아래에, 사북과 고한의 가장 밑자리에, 전당포와 유흥주점이 난립해 있다. 카지노와 골프와 스키로 인해 외지인들은 급속히 밀려 들어왔다가 피로에 지친 표정으로 빠져나간다. 그것을 사북과 고한은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본다.”
테마파크, 웰컴 투 원더랜드 - 월미도 놀이공원, 용인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테마파크는 일상의 괴로움과 불투명한 미래를 잊을 수 있는 도시인의 피난처다. 네온사인들이 번쩍거리는 인천 월미도부터, 여름철의 캐리비안베이와 겨울의 비발디파크 그리고 마성톨게이트부터 새로운 나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주는 에버랜드까지. 도시인들은 들어서는 순간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동화처럼 가공된 판타지를 즐길 수 있는 인공 낙원을 찾는다. 저자는 그곳을 찾는 사람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만나보았다.
“신성과 자연성은 물론 인성마저 점점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있는 거대한 소비 욕망의 시대에 이 산하 곳곳은 테마파크로 급변하고 있다. 다양한 ‘어트랙션’은 짜릿한 쾌감을 분만하고 바다를 모사한 유사 바다는 ‘안전’하며 쾌적하다. 낱낱의 시설들은 정교하게 연계되어 최고 수준의 소비를 자극한다. 유도 분만된 쾌락을 위하여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경기장, 그 많은 ‘개인’들의 용광로 - 동대문운동장, 서울 월드컵경기장
축구 칼럼니스트로서 활동한 저자는 여러 나라의 유명 축구 경기장을 찾았던 경험과 함께 우리의 공간에서 사라지고 태어난 경기장의 모습을 동시에 펼쳐 보인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수만 명의 사람이 순식간에 운집했다가 사라지는 믿을 수 없는 공간이 바로 경기장이다. 개인의 욕망이 집단의 거대한 구호로 탈바꿈하는 경기장은 도시의 규모에 맞추어 탈바꿈되어왔다. 벌써 기억에서도 사라져간 동대문운동장과 서울을 대표하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함께 담았다.
“경기장은, 6만여 명이 강제 동원되어 일사분란하게 ‘애국심’의 구호를 외치는 연병장이 아니다. 저마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6만 개의 열렬한 사랑의 행렬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경기장은 개인의 열정과 공동체의 열망이 수렴되고 확산되는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무대다.”
박물관, 유한한 삶과 영속의 시간 -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대표성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전통적 중심지를 살짝 빗겨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용산이라는 지역이 담고 있는 의미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을 본다면 이 인공 공간의 역사와 정체성도 함께 추적할 수 있다. 장구한 시간의 축 위에 존재하는 인간을 느끼기 위해 찾는 박물관. 평일 한낮에 이곳을 찾은 저자는 박물관 안의 적막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박물관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며 시간이 정박된 유물의 무덤도 아니다. 더욱이 ‘국립중앙’ 박물관이라는 거대한 공간은, 육중한 물리적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그 안에 수집 연구 전시된 실질의 성찰적 재현에 의하여 초월과 영속의 순간을 빚어내야 한다.”
공항, 해체된 시간과 재구성된 공간 - 인천공항, 김포공항
공항은 현대인들의 가장 포스트모던한 공간이다. 속도와 국경의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이 실현되는 곳이며, 첨단의 테크놀로지와 시스템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항인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에는 각각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가장 인공적인 낭만이 스민 그곳은 이제 안락한 쇼핑몰이기도 하다.
“공항은 그리고 비행기는, 도시 일상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과 속도의 스펙터클을 수시로 연출한다. 날렵하게 이륙하는 점보 비행기, 광막한 흰 구름의 바다 위를 나는 지극한 투명성! 지상의 지형지물은 저 아래로 펼쳐진다. 거대한 유리와 날렵한 철골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구성된 공항은 하이테크놀로지가 빚어낸 거대한 인공 낙원이다.”
기차역, 식민의 기억과 현대의 속도 - 서울역, 푸드코트 그리고 대우빌딩
그 특유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어지던 풍경은 이제 시속 300킬로미터의 쾌속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현대식 서울역 옆에는 문화재가 된 옛날의 서울역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서울역 앞의 대우빌딩은 전면이 거대한 예술작품이 되어 빛을 발하는 서울스퀘어로 바뀌었다. 저자는 서울역 푸드코트에 앉아 거대한 창문 너머로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은 그곳의 경관을 바라본다. 도시로 오고 도시를 떠나는 기차역은 저마다의 기억을 품는 인공 공간이다. 이 땅의 크고 작은 기차역을 거쳐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공간만이 아닌 시간을 횡단해온 철로의 의미를 살펴본다.
“더 이상 기차는 폐곡선을 그리며 달리지 않는다. 기차는 쾌속의 300킬로미터로 질주한다. 서울역 또한 소비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기념해야 할 흔적과 간직해야 할 기억은 ‘구경거리’로 수집되어 있다. 서울역 안에서 애틋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풍경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번잡한 구경거리와 쇼핑 상품들 때문에 서울역은 더 이상 사랑과 눈물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이삼십 년 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이삼십 년 후에는 어떻게 살까’라는 물음은 일상의 작은 틈을 들여다보면 희미하나마 답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그 틈을 통해 익숙한 자기 공간과 일상의 문화가 얼마나 낯설고, 어떤 면에서는 공포스럽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실천하는 일상적 문화 행위가 자연스럽지만은 않다면 우리의 사는 모습을 다시 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어나가야 하는가를 가늠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인공 낙원』은 우리가 사는 그곳을 잠시 나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지어왔는지를 함께 보는 시간이다.
* 광장, 일그러진 구경거리와 균형 잃은 삶
유럽의 도시와 광장 | 광장의 역사와 문화 | 광화문광장? 거대한 중앙분리대 | 인위로 급조한 광장 | 인간 중심의 광장? | 역사문화 체험 공간? | 광화문광장에서도 사랑이 가능할까?
* 극장, 판타지 너머의 현실
극장 구경을 하러 갔다 | 극장 연대기 | 인공 공간의 핵심, 멀티플렉스 영화관 | 하나의 새로운 시작, 새로운 세계에서 시작 | 이제, 깨어날 시간이다
* 모델하우스, 가설무대의 삶
모델하우스를 찾아서 | 옵션 상품입니다 | 모델하우스의 변천 | 모델하우스, 심미적 전략 공간 | 아파트, 가설무대의 삶
* 모텔, 최후의 망명지
모텔, 욕망의 비상구 | 모텔을 찾아 나서다 | 여인숙에서 모텔로 | 천, 천, 히 변해온 사랑의 무늬 | 군더더기 없는 사랑법
* 백화점, 욕망의 진앙지
압도적 크기, 또 하나의 ‘세계 최대’ | 층별 배치를 뒤바꾸다 | 쇼핑+휴양+문화 | 백화점, 욕망의 용광로 | 새로운 도시의 문화 공간
* 카지노, 폐광지의 불야성
오후 3시, 영월에서 사북 사이 | 오후 4시 30분, 사북 | 백색의 계엄령 | 오후 6시, 강원랜드 카지노 | 오후 11시, 카지노 객장 | 새벽 2시, 고한역 | 오전 11시, 옛 동원탄좌 |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 테마파크, 웰컴 투 원더랜드
플라스틱, 놀이터 그리고 테마파크 | 웰컴 투 테마파크 | 월미도의 스산한 바람 |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절망을 버릴지어다 | 최초의 테마파크는 디즈니랜드 | 국내 최초의 워터파크 | 카리브해의 거대한 모사품 | 신성과 자연성이 거세된 인공의 바다
* 경기장, 그 많은 ‘개인’들의 용광로
망각의 운명으로 사라져버린 동대문운동장 | 축구, 월드컵 그리고 스타디움 | 방패연, 돛배 그리고 소반 | 검이불루 화이불치 | 21세기형 복합 문화 공간 | 창의와 열정의 공간 | 꿈의 구장, 꿈의 향연
* 박물관, 유한한 삶과 영속의 시간
용산, 경제와 군사의 요충지 |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는 길 | 박물관, 민족의식의 전시장 | 몽유도원도, 찰나에서 영속으로 | 몽유도원도와 강산무진도
* 공항, 해체된 시간과 재구성된 공간
오차 없이 구성된 인공 공간 | 직선과 속도의 공간 | ‘편리하고 쾌적한’ 인공 도시 | 공항, 무국적의 비장소 | 활주로, 창공, 관제탑 | 인공과 낭만 | 직선을 거스르는 회항
* 기차역, 식민의 기억과 현대의 속도
기차, 소리들 | 서울역, 그리고 대우빌딩 | 서울역, 개찰구 앞에서 | 기차, 근대의 추억 | 경성역, 이식된 제국주의 | 서울역, 공간의 재편 | 다시, 서울역 푸드코트에서
“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삶의 거푸집으로 존재하는
거대 도시의 인공 공간들에 대한 내밀한 성찰의 기록이다.
급변하는 대도시, 날로 비대해져가는 메트로폴리스,
맹진하는 속도와 휴식 없는 노동과
번들거리는 물신의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무국적의 글로벌폴리스.
과연 이 변화는 무엇이며,
이 속에서 건사되는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서문〉중에서
우리의 삶이 퇴적되어온 현대의 유적, 도시의 인공 공간
문화평론가 정윤수가 직접 보고 느끼며 발굴한,
한국 도시 공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도시는 거대해졌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인공 공간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점점 주눅 들고 있다. 광화문광장을 비롯하여 도처에 ‘구경거리’가 늘어나지만 하나같이 키치적인 ‘관상용’으로 조잡하게 배열될 뿐이며 그 사이로 한낮의 소일거리를 찾아 나선 인간은, 풍경이 영혼 깊숙이 드리워지는 본질적인 위로를 얻지 못한 채, 그저 인증샷을 찍고 돌아선다. 경관이 해체되고 풍경이 사라지고 그 속에서 애틋하게 이뤄졌던 사람살이의 인연마저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말끔히 정제되고 마는 거대 도시의 인공 공간! 우리에게 과연 인간적 삶이란 가능한가?” -〈서문〉중에서
거대한 도시 공간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일상의 풍경은 자연의 것이기보다는 인공의 구조물인 경우가 많다. 줄지어 선 빌딩 사이를 거닐고, 인공의 공간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일하고 노는 도시인들, 심지어 떠나고 도착하는 터미널도 인공의 공간으로 귀결된다.
이렇듯 언젠가부터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든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졌고, 대부분의 기억과 추억도 공간이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 역시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며, 자신만의 생사고락을 써나가고 있다. 도시는 그렇게 공간의 역사를 품은 거대한 이야기책이 되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이러한 현대 도시 공간의 모습을 ‘인공 낙원’이라 칭하며, 같은 제목의 책을 펴냈다. 도시 공간은 우리의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는 동시에, 벗어나고 싶다가도 속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낙원의 모습으로 우리를 감싼다고 그는 말한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논설위원, 클래식 음악과 문화예술 강연자, 축구 칼럼니스트 등 현대의 문화예술과 인간적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가르쳐온 정윤수는 『인공 낙원: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광장, 극장, 모델하우스, 모텔, 카지노 등 우리의 삶이 퇴적되어온 현대의 유적, 도시의 인공 공간을 직접 발로 뛰며 탐사한 성찰의 기록을 담았다.
그동안 건축과 공간에 대한 다양한 책이 나왔지만, 저자는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우리만의 도시 공간과 그 안에 닮긴 삶의 궤적을 담고자 하였다. 이 책에는 건축물을 그럴싸하게 담아낸 포스터 같은 사진이 없다. 그가 직접 찾아가 인간의 눈높이에서 살아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들이 전부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있고 일상의 풍경이 시큼할 정도로 꾸밈없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위해 근 10년 동안 꾸준히 취재하고 사진을 찍은 만큼, 그동안 미묘하게 변화된 도시의 인공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 모습이 잘 포착되어 있다.
20세기를 마치고 21세기에 접어들어 거침없이 그리고 정신없이 달려오던 우리의 삶과 표정이 담긴 책,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한 기록을 펼친 진귀한 책이기도 하다.
환호와 환멸이 공존하는 열한 곳의 인공 낙원을 찾아가다!
도시는 거대해졌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여기 이곳에서, 우리에게 과연 인간적 삶이란 가능한가?
저자는 총 열한 곳의 거대 도시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안에 크고 작은 공간들을 포함시켰다. 인간적 호흡이나 관계가 끊어지고 새롭게 조성되는 거대한 인위적 공간들, 광화문광장이나 인천공항 같은 시대의 랜드마크부터 아파트 모델하우스, 백화점, 테마파크, 카지노, 모텔처럼 도시인들의 이런저런 욕망이 맞닿은 공간과 함께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는 ‘나’를 둘러싼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해,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도시 공간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묻는다.
광장, 일그러진 구경거리와 균형 잃은 삶 - 광화문광장
광화문 앞에 새롭게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당위를 들며 추진되었다. 저자는 건널목을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광장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광화문 앞까지 ‘걸어가도록’ 조성된 공간을 살펴본다. 왕이 다스리던 시절을 복원하고 싶은 이곳은 시민을 위한 곳이 아닐 때도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주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은 광화문광장을 사전에 장악한다.
지하철로 이어지는 해치마당에는 서울시의 홍보물이 쉴 새 없이 영사되는 이곳,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허가’의 공간으로 보고 있다. 시민이 모이는 ‘아고라’가 아닌 ‘국가 상징의 공간’이 된 광화문광장.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광장으로 들어서 땅에 키스를 한다면 경찰에게 제지를 당할지도 모르는 곳이다.
“광화문광장이 ‘국가 상징의 축’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그 안의 조형물과 이벤트는 프레임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시선과 이미지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국가 상징’에 부합하는 조형물과 이벤트만이 허용되는 관제 광장, 시민의 일상 공간이 아니라 ‘국가 상징의 축’으로 기능해야만 하는 광장, 그것이 광화문광장의 일그러진 운명이다.”
극장, 판타지 너머의 현실 - 단성사, 명보극장에서 메가박스, CGV까지
저자에게 극장은 특별한 공간이다. 젊은 시절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학교를 벗어난 그는 산재된 극장들을 기점으로 도시를 순회하던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보아온 극장의 연대기를 이 책에 펼쳐 보인다. 단성사,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서울극장 같은 단관 개봉관들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사라졌거나 나름의 변신을 시도하였다. 극장은 이제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다. 소비하고 산책하는 경로의 중심에 위치한다. 오늘날 도시의 극장은 쇼핑몰 안에 있는 인공의 낙원이다.
“오늘날 극장은 거대한 복합 쇼핑몰 안에 위치하여 대도시 관객의 일상 시간을 끝없이 확장한다. 멀티플렉스의 동선은 일체의 ‘외부’를 허용하지 않는다. 복합 쇼핑몰의 식당, 게임장, 쇼윈도, 카페 등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한 세대 전에 사람들은 영화를 본 후 공원이나 거리를 산책했다. 그런데 이제는 거대한 쇼핑몰 안에서, 쇼윈도 사이로, 산책한다.”
모델하우스, 가설무대의 삶 - 한강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래미안 갤러리까지
한국에서 중산층이 또는 중산층이 되려는 이들이 가장 욕망하는 것은 아파트다. 그 꿈의 견본품은 도심이든 외곽이든 절묘한 곳에 세워져 사람들을 유혹한다. 모델이 된 집. 모델하우스다. 1969년 서울 한강변 동부이촌동 한강아파트부터 시작된 모델하우스는 이제 래미안 갤러리, 힐스테이트 갤러리, 자이 주택문화관, 두산 아트 스퀘어 등으로 진화하였다. 그사이 아파트는 1차, 2차를 달던 이름에서 진달래, 개나리, 달빛이라는 수식어를 이용하다가 이제는 푸르지오, 래미안, 자이 같은 브랜드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저자는 화려한 모델하우스의 정면으로 들어가서 가건물의 외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뒷면으로 나온다. 어느 모델하우스든지 그 주차장은 한적하여 쓸쓸한 모습이다.
“대도시의 네거리마다 요란한 치장으로 서 있는 모델하우스는 한곳에 정박하지 못하고 끝없이 떠도는 우리 삶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모델하우스는 그 자체가 임시 가설물로 언제든지 쉽게 짓거나 철거할 수 있고 다른 벌판으로 손쉽게 이전할 수 있다. 가설무대의 삶! 오늘도 ‘낙원구 행복동’에는 모델하우스가 창궐한다.”
모텔, 최후의 망명지 - 신촌 여인숙, 해운대 모텔촌, 화곡동 테마모텔
모텔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음습한 곳이 아니다. 연인들이 올린 모텔 사용 후기를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직접 찾아가본다. 불야성의 모텔들이 번창한 화곡동 모텔촌. 홀로 방문한 모텔은 대형 텔레비전과 커플을 위한 두 대의 컴퓨터가 있다. 어두운 골목길의 여인숙과 다르게 오늘날의 모텔은 쿠폰 적립이 가능한 누군가의 인공 낙원이다.
“남루했던 여인숙이나 장급 여관이 모텔로 바뀌고, 다시 ‘부티크텔’이니 ‘럭셔리텔’ 같은 이름으로 새 단장하면서도 도심지의 숙박 시설은 ‘테마형 문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모텔은, 불가피한 격정에 시달리다 못해 간신히 찾아가는 도피처가 아니라 열정의 순간들을 맘껏 소비하는, ‘강박증’을 벗어던지고, 쾌적하고 고급스런 레저 공간이 되고 있다.”
백화점, 욕망의 진앙지 - 해운대 센텀시티
백화점은 팔기만 하는 공간이 더 이상 아니다. 되도록 그곳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며, 끝내 방문자가 소비하게끔 유도하는 도시 안의 도시다. 저자는 부산 해운대구에 들어선 세계 최대 백화점 센텀시티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첨단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온 해당 지역의 장소성을 말끔히 지우는 데는 그 위에 자본과 지방 정부와 소비의 욕망이 뒤엉킨 초대형 초고층의 물신이 들어서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래서 재개발의 중심에는 언제나 백화점이 들어섰다. 백화점은 인공 낙원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세운 성주의 성이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온 각 지역의 장소성은 사라지고 지방 정부와 자본과 소비 욕망이 뒤엉킨 초대형 초고층의 쇼핑몰이 들어서고 있다. 그 물신은, 너무나 압도적이며 노골적이다. 현대 도시의 인간은, 거대한 소비 공간의 ‘바깥’에서 살아가는 게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카지노, 폐광지의 불야성 -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강원도 정선.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욕망의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이 있을까. 깊은 밤 카지노 객장을 찾은 저자는 ‘무표정한 긴장’이 서린 그곳을 벗어나 근처 고한역으로 가본다. 그곳에는 빈털터리가 되어 오갈 데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누워 있다. 폐광된 탄광촌들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조성될 계획이 수립되어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것은 거리에 늘어선 네온사인들이다. 그리고 강원도는 이제 평창을 중심으로 동계 올림픽을 준비하는 또 다른 희망에 차 있다.
“해발 1,200미터 이상의 옛 운탄길 저 아래로 강원랜드의 스키장이 있고 골프장이 있고 카지노가 있다. 또 그 아래에, 사북과 고한의 가장 밑자리에, 전당포와 유흥주점이 난립해 있다. 카지노와 골프와 스키로 인해 외지인들은 급속히 밀려 들어왔다가 피로에 지친 표정으로 빠져나간다. 그것을 사북과 고한은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본다.”
테마파크, 웰컴 투 원더랜드 - 월미도 놀이공원, 용인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테마파크는 일상의 괴로움과 불투명한 미래를 잊을 수 있는 도시인의 피난처다. 네온사인들이 번쩍거리는 인천 월미도부터, 여름철의 캐리비안베이와 겨울의 비발디파크 그리고 마성톨게이트부터 새로운 나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주는 에버랜드까지. 도시인들은 들어서는 순간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동화처럼 가공된 판타지를 즐길 수 있는 인공 낙원을 찾는다. 저자는 그곳을 찾는 사람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만나보았다.
“신성과 자연성은 물론 인성마저 점점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있는 거대한 소비 욕망의 시대에 이 산하 곳곳은 테마파크로 급변하고 있다. 다양한 ‘어트랙션’은 짜릿한 쾌감을 분만하고 바다를 모사한 유사 바다는 ‘안전’하며 쾌적하다. 낱낱의 시설들은 정교하게 연계되어 최고 수준의 소비를 자극한다. 유도 분만된 쾌락을 위하여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경기장, 그 많은 ‘개인’들의 용광로 - 동대문운동장, 서울 월드컵경기장
축구 칼럼니스트로서 활동한 저자는 여러 나라의 유명 축구 경기장을 찾았던 경험과 함께 우리의 공간에서 사라지고 태어난 경기장의 모습을 동시에 펼쳐 보인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수만 명의 사람이 순식간에 운집했다가 사라지는 믿을 수 없는 공간이 바로 경기장이다. 개인의 욕망이 집단의 거대한 구호로 탈바꿈하는 경기장은 도시의 규모에 맞추어 탈바꿈되어왔다. 벌써 기억에서도 사라져간 동대문운동장과 서울을 대표하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함께 담았다.
“경기장은, 6만여 명이 강제 동원되어 일사분란하게 ‘애국심’의 구호를 외치는 연병장이 아니다. 저마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6만 개의 열렬한 사랑의 행렬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경기장은 개인의 열정과 공동체의 열망이 수렴되고 확산되는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무대다.”
박물관, 유한한 삶과 영속의 시간 -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대표성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전통적 중심지를 살짝 빗겨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용산이라는 지역이 담고 있는 의미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을 본다면 이 인공 공간의 역사와 정체성도 함께 추적할 수 있다. 장구한 시간의 축 위에 존재하는 인간을 느끼기 위해 찾는 박물관. 평일 한낮에 이곳을 찾은 저자는 박물관 안의 적막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박물관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며 시간이 정박된 유물의 무덤도 아니다. 더욱이 ‘국립중앙’ 박물관이라는 거대한 공간은, 육중한 물리적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그 안에 수집 연구 전시된 실질의 성찰적 재현에 의하여 초월과 영속의 순간을 빚어내야 한다.”
공항, 해체된 시간과 재구성된 공간 - 인천공항, 김포공항
공항은 현대인들의 가장 포스트모던한 공간이다. 속도와 국경의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이 실현되는 곳이며, 첨단의 테크놀로지와 시스템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항인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에는 각각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가장 인공적인 낭만이 스민 그곳은 이제 안락한 쇼핑몰이기도 하다.
“공항은 그리고 비행기는, 도시 일상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과 속도의 스펙터클을 수시로 연출한다. 날렵하게 이륙하는 점보 비행기, 광막한 흰 구름의 바다 위를 나는 지극한 투명성! 지상의 지형지물은 저 아래로 펼쳐진다. 거대한 유리와 날렵한 철골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구성된 공항은 하이테크놀로지가 빚어낸 거대한 인공 낙원이다.”
기차역, 식민의 기억과 현대의 속도 - 서울역, 푸드코트 그리고 대우빌딩
그 특유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어지던 풍경은 이제 시속 300킬로미터의 쾌속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현대식 서울역 옆에는 문화재가 된 옛날의 서울역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서울역 앞의 대우빌딩은 전면이 거대한 예술작품이 되어 빛을 발하는 서울스퀘어로 바뀌었다. 저자는 서울역 푸드코트에 앉아 거대한 창문 너머로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은 그곳의 경관을 바라본다. 도시로 오고 도시를 떠나는 기차역은 저마다의 기억을 품는 인공 공간이다. 이 땅의 크고 작은 기차역을 거쳐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공간만이 아닌 시간을 횡단해온 철로의 의미를 살펴본다.
“더 이상 기차는 폐곡선을 그리며 달리지 않는다. 기차는 쾌속의 300킬로미터로 질주한다. 서울역 또한 소비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기념해야 할 흔적과 간직해야 할 기억은 ‘구경거리’로 수집되어 있다. 서울역 안에서 애틋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풍경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번잡한 구경거리와 쇼핑 상품들 때문에 서울역은 더 이상 사랑과 눈물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이삼십 년 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이삼십 년 후에는 어떻게 살까’라는 물음은 일상의 작은 틈을 들여다보면 희미하나마 답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그 틈을 통해 익숙한 자기 공간과 일상의 문화가 얼마나 낯설고, 어떤 면에서는 공포스럽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실천하는 일상적 문화 행위가 자연스럽지만은 않다면 우리의 사는 모습을 다시 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어나가야 하는가를 가늠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인공 낙원』은 우리가 사는 그곳을 잠시 나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지어왔는지를 함께 보는 시간이다.
'# Fun Interest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 ::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 (0) | 2012.03.15 |
---|---|
런던 디자인 산책 :: 김지원 (0) | 2012.03.15 |
건축, 흙에 매혹되다 :: 지속 가능한 도시의 꿈 (0) | 2012.03.12 |
영화 :: 질 들뢰즈 (0) | 2012.03.12 |
바다의 기별 (0) | 2012.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