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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 Architecture/fun news

배구단 숙소에 깜짝, 한옥에 또 깜짝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숙소
성환읍 시골길 언덕 위에 우뚝
중세 성곽 닮은 알루미늄 외피
한옥 처마와 서까래 모습 심어
실내 들어서면 돔 천장 배구장
숙소 변기 높인 세심한 배려도

천안시에서 성환읍쪽으로 가다보면 석곡저수지 부근 전형적 시골길 사이로 묘한 건물이 등장한다. 최근 완공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프로배구단의 합숙소 겸 훈련장 건물인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다.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달라 보이는 금속 외피를 뒤집어쓴 이 정사각형 건물은 워낙 독특해 한두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려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건축물이다. 이름에 ‘성’이란 뜻의 ‘캐슬’이 들어간 것처럼 논과 밭 너머 약간 솟은 언덕 위에 성처럼 들어섰다.

황두진 건축가가 설계한 이 건물은 가로 50m, 세로 50m인 정사각형 땅에 높이 25m로 세워졌다. ‘알루미늄 익스팬디드 메탈’, 곧 일종의 철망을 씌워 멀리서 보면 철갑을 두른 중세의 성채, 또는 중세 기사의 철가면 같다. 옥상에는 나부끼는 깃발까지 달았다.

 

‘성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자. 사각형 건물에 들어서면 내부는 배구장 두 개 크기로 텅 비웠다. 가운데는 정원 대신 배구 코트를 두고 천장을 돔으로 덮었다. ‘현대의 기사’들이라고 할 수 있을 배구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이다. 건축주 현대캐피탈은 ‘배구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성주’인 셈이다.

중앙 코트 가장자리를 이루는 벽체는 모두 선수들의 숙소와 지원 시설이다. 연습장을 가운데 두고 선수들의 방이 빙 둘러싼 모양인 것이다. 1층에는 물리치료실과 사우나 등이, 2층에는 체력단련실과 재활치료실, 전력분석실, 식당이 있고 3~4층이 숙소다. 배구 선수들이 한곳에서 먹고 자면서 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전천후 원스톱 배구선수 합숙훈련소’다. 코트에서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곧바로 치료를 받거나 사우나에서 몸을 씻을 수 있고, 위로 올라가면 바로 숙소와 휴게실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합숙 훈련이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니 이 새로운 합숙소는 곧 한국에만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용도 못잖게 독특한 여러 가지 건축적인 장치들이 그 안에 숨어 있다. 건물은 네모인데 안에는 정확하게 내접하는 완벽한 원형이 들어 있다. 건물 4개면 중간으로 150m 원형 러닝 트랙을 배치한 것. 실내에서도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전망이 좋은 2층에 체력단련실과 식당을 둔 것도 눈에 들어온다. 보통 스포츠 선수단 합숙소에서는 지하에 두던 시설들이다.

건축가는 배구 선수들의 ‘성’을 지으면서 원과 사각형 같은 절대 기하학적 형태들로 ‘기하의 세계’를 추구했다. 성의 네 귀퉁이는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일반 건물은 정면을 남쪽으로 향하게 하는데 45도를 비틀어 마름모처럼 배치한 것. 영구 음영이 지는 곳 없이 네 면 모두 연중 풍부한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중정식인데다 유리창이나 문을 많이 달아 선수들끼리 서로의 존재를 어디서나 항상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숙소는 개별이면서 연결된다. 숙소 사이 발코니를 통해 사슬처럼 이어져 ‘하나의 팀’이라는 소속감을 나타냈다. 재미있는 것은 숙소의 층고가 일반 건물의 2.4m보다 훨씬 높은 3m란 점. 창문도 훨씬 키가 크고, 가구도 키가 크고, 화장실 변기도 높이가 더 높아졌다. 평균 신장이 일반인들보다 훨씬 커 일반인에 맞춘 건물에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던 선수들을 위한 배려다.

또 하나의 숨은 비밀은 이 현대적인 중세 성채가 실은 한옥이란 점이다. 건물을 감싼 알루미늄 외피가 바로 한옥의 처마다. 달군 알루미늄 판을 촘촘한 마름모 틀로 눌러 찢은 뒤 사이를 벌려 틈을 낸 것인데, 그물눈처럼 파인 구멍들이 모두 45도 각도를 이루도록 했다. 한옥의 처마처럼 고도가 높은 한여름 햇빛은 가리고, 고도가 낮은 겨울 햇빛은 건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낸다. 중정을 덮은 돔의 철골 또한 한옥의 서까래와 모습·구조가 상통한다.

황두진 소장은 “겉모습은 중세 서양식 건물이지만 건물 곳곳에 한옥의 디엔에이가 녹아들어 있다”며 그동안 자신이 한옥을 짓지 않았다면 이런 모양의 건축물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