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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 Architecture/fun news

“세운상가 뚝딱 설계…건축 성의 부족했다”

 

 

원로건축가 윤승중 구술집 나와
‘김수근 사무소’ 설계팀 이끈 산증인
워커힐 호텔 등 60년대 건축 비화
‘박정희 독재와 건축’ 기억도 풀어내

 

원로건축가 윤승중 씨.

“여의도공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에 전화위복이 됐다. 평양 창광거리의 군사퍼레이드를 부러워한 그가 5·16 광장을 만들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으면, 집이 들어차서 그런 도시공원은 없었을 것이다.” “세운상가는 토요일 오후 김수근 선생이 갑자기 불러 맡긴 과제였는데, 며칠만에 계획안을 정리해 드리면서 사업이 시작됐다…시장이 당장 그려오라고 해서…건축적으로 그만큼 성의가 부족했고…나도 그 근처를 좋아하지 않았다.”

1960년대 서울 여의도 개발과 세운상가 건립 등 한국 현대건축사 주요 사건들의 이면을 털어놓은 원로 건축가 윤승중(78·원도시건축회장)씨의 육성 증언이 세상에 나왔다. 2011년부터 근현대 건축기록물 수집 보존 작업을 벌여온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은 최근 <윤승중구술집>(마티)을 펴냈다. 전봉희 서울대교수 등 후배 연구자 4명이 2012년 10차례 벌인 인터뷰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윤씨는 60년대 건축거장 김수근의 사무소에서 설계팀을 이끌며 유걸, 김원씨 등 후배건축가들을 길러냈다. 당시 군사정권이 지원한 대규모 건축개발사업 실무를 맡았던 건축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구술집에서 윤씨는 61년부터 9년동안 보필했던 스승 김수근의 행적과 일화들을 주로 증언한다. 60년 대학 건축과 졸업 뒤 김수근 사무소로 들어가 워커힐, 자유센터, 오양빌딩, 부여박물관 등 60년대 주요 건축물들의 실시설계를 맡았던 시절 비화들이 많다. 64년 개관한 남산 자유센터를 지을 때 김수근이 부근에서 나온 한양성벽돌을 보관한다는 개념을 갖고 부재로 썼으며 이 얘기를 고인한테 직접 들었다는 증언은 논쟁적이다. 미군 휴양시설을 짓는 워커힐 건설에 국내 주요 건축가들이 징발되듯 동원돼 장교의 호통을 들으며 일했다는 김수근의 전언이나, 50년대말 국회의사당 현상공모에 건축과 학생들까지 몰두해 휴강이 속출했다는 체험담 등이 흥미롭다. 그는 김수근을 “열을 집어넣으면 열둘을 만들어낼 정도로 ‘출력능력’과 독창성이 뛰어났다”고 회고했다.

독재자 박정희에 얽힌 기억들도 종종 나온다. 70년대말 공간 드로잉까지 하며 건축가들을 호출해 충청권 행정수도이전안을 만들라고 요구했던 박정희를 두고 그는 건축가가 되었다면 독재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와우아파트 붕괴처럼 뻔히 안되는 것을 되게 만들면 된다는 식의 풍토를 만든 것은 독재의 나쁜 결과라는 평가도 내린다.

재단 쪽은 이 구술집과 함께 90년대초 현장 비평 등을 통해 당대 시대정신을 건축계에 불어넣었던 4·3그룹 건축인들의 자료집도 출간했다. 김인철, 조성룡, 승효상씨 등 참여작가 15명의 회고담을 정리한 <4.3그룹 구술집>(마티)과 담론집인 <전환기의 한국건축과 4.3그룹>(집)이다. 90년 4월3일 14명의 건축가 모임에서 시작해 90년대 중반까지 건축사 기행과 파격적인 작품전시, 비평모임 등을 실천했던 4.3그룹의 건축사적 의미를 정리한 첫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