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입 14억원 스타강사, 팀원만 6명… 연예인 뺨치는 인기
연수입 2,200만원 박봉강사, 낮엔 강의자판기, 밤엔 대리기사
스타 강사. 이들의 이름은 곧 하나의 브랜드다.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모습은 연예인과 닮았다. 사진은 전문 모델이 기사 분위기에 어울리게 연출한 뒤 찍은 것이다. 촬영협조=TNGT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1990년대 중반. 학원가 지형도를 뒤흔든 큰 물결이 밀려왔다. 바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등장. 대치동이 뜨면서 학원 강사도 떴다. 그들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됐다. 연 수입 10억 원 이상 올리는 ‘스타 강사’들이 생겼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스타 강사들이 강남에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 강사들의 입지가 좁아졌다.2000년대 들어 강사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인강(인터넷 강의)’의 등장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온라인에서 뜬 일부 전국구 강사들은 최고 수십억 원의 연봉을 손에 쥐었지만, 거기서 소외된 강사들은 ‘박봉’(국세청이 2011년 발간한 ‘국세통계연보 2010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원 강사의 수는 30만8219명, 이들의 연평균 수입은 1133만 원)에 시달리게 됐다.
그리고 지금 2011년, 강사들은 얘기한다. 학원가는 승자독식의 살벌한 정글이라고. 경력 20년이 넘는 한 베테랑 강사는 이렇게 전했다. “온라인 강의 등 교육 인프라 확장은 강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죠. 그런데 그만큼 시장이 살벌하게 변했어요. 10년 전만 해도 돈은 좀 덜 벌어도 낭만이 있었죠. 이젠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상대에게 베풀 자비도 없어요.”
‘사교육 천국’ 대한민국. 그 중심에 서 있는 학원 강사들의 처절한 세계를 들여다본다. 》
■ 스타 강사 이석현 씨(가명)의 24시
○ 06:00
저절로 눈이 떠진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속이 쓰리다. 또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긴장감과 강의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빚어낸 직업병. 이 병을 달고 산 지 5년이 넘었다. 허겁지겁 아침을 챙겨 먹고 두 아이의 얼굴을 본다. 수능 끝나고 잠깐 있는 휴식기를 빼곤 아이들과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 아이들에게 늘 뭐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은 함께 있지 못한다는 미안함 때문일까.
∴ 영어학원계의 대부로 불린 이익훈 전 ‘이익훈 어학원’ 원장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고정된 자세로 하루 10시간 이상 강의를 하다 전립샘암으로 2008년 사망했다. 족집게 논술 강의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조진만 전(前) 메가스터디 부사장 역시 2001년 과로로 숨졌다.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50)는 “불규칙한 생활, 과도한 스트레스로 스타 강사들의 건강은 일반인 평균보다 3배 이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 드레스 룸에 있는 옷장을 연다. 각종 의류와 구두, 스카프, 시계 등이 빼곡히 정돈돼 있다. 스타 강사는 연예인이다. 사춘기 학생들이 고객이자 팬이다. 따라서 외모는 곧 경쟁력. 나 역시 패션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이틀에 한 번꼴로 피부 관리실에 간다.
∴ 연예인처럼 이미지를 관리하려는 학원 강사들이 늘면서 화장법, 의상 코디네이션을 도와주는 ‘학원 강사 매니지먼트’ 업체까지 생겨났다. 서울에만 10개가 넘는 업체가 성업 중이다.
○ 07:00
학원에 출근하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건다. 산 지 두 달 된 독일제 고급 세단. 아직 야외로 드라이브 한 번 못 나갔다. 그래도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꿈이었던 기자 시험에 합격했더라면 지금 이 차를 만질 수 있기나 했을까.’
∴ ‘O2’가 강남구 대치동 학원 강사 30명(월평균 수입이 1000만 원 이상인 강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원 강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많은 수입’(15명)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교육자로서 자긍심’(6명), ‘노력한 만큼 얻는 직업 특성’(5명), ‘가르치는 즐거움’(3명), ‘자유로운 시간 활용’(1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 08:00
출근길에 하루 일과를 머릿속에 그려 본다. 항상 비슷한 일과지만 강의를 떠올리면 언제나 식은땀이 난다. 한 번 삐끗하면 언제 B급 강사로 떨어질지 모르는 전쟁터. 문득 “‘일타 강사’(마감 시 과목마다 수강생이 가장 먼저 차는 대표 강사) 자리는 오르기보다 지키는 게 10배 이상 어렵다”던 선배 강사의 얘기가 떠오른다. 그만큼 냉정한 세계다.
∴ 앞의 설문조사에서 ‘학원 강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묻는 질문에 30명 가운데 가장 많은 13명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꼽았다. 그 다음은 ‘과도한 업무량’(6명), ‘긴장의 연속’(5명),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4명), ‘주변의 인식’(2명) 순이었다.
첫 강의부터 전쟁이다. 200명 정원을 꽉꽉 채운 오프라인 강의 3개가 70분 강의, 15분 휴식 간격으로 쭉 이어진다. 오프라인은 수입의 30%를 차지하는 비중 있는 부분이지만, 온라인 강의를 위한 준비 과정이란 점에서 신경이 더욱 쓰인다.
∴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의 경력 7년차 베테랑 상담실장은 “오프라인 수업을 듣는 학생 가운데 95% 이상이 수업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그 강사는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온라인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전천후 강사’라고 설명했다.
▼ 일타강사 “돈은 많은데 미래가 왜 이리 불안한지” ▼
○ 12:30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치우면서 오늘 강의에서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부분을 떠올린다. 날것처럼 신선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신무기’를 장착하는 건 선택이 아닌 의무다.
∴ 최고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서울시 교육정책보좌관으로 ‘보직 변경’한 이범 씨는 “학생들을 10분 안에 사로잡지 못하면 스타 강사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통 강사들은 하나의 접근방법밖에 없지만, 스타 강사는 적어도 3개 이상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며 “그래서 어떤 상황이 와도 흐름을 파악해 유연하게 맞춤형 강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14:00
강남 캠퍼스로 이동. 강남, 특히 대치동은 학원 강사들에겐 ‘소리 없는 전쟁터’다. 예전에 한 동료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주택가라 서울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 대치동이라잖아. 근데 난 이곳에만 오면 머리털이 곤두서. 전날 2시간밖에 못 자도 여기 공기만 맡으면 하품할 여유까지 사라진다니까….”
∴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1∼3월) 서울 강남 지역에서 새로 생겨난 학원만 126곳이다. 하루 한 개꼴로 새로운 학원이 문을 열었다는 뜻이다.
도착하자마자 6명으로 구성된 강의개발팀이 붙는다. 교육 관련 신문기사 스크랩에서부터 전날 강의콘텐츠에 대한 학생들 반응, 수만 건 이상 인터넷에 올라온 질문 가운데 추려낸 것들, 강의 분위기를 띄울 만한 새로운 유머, 얼굴 표정이나 몸짓에 대한 리뷰까지 브리핑을 받는다. 이 모든 게 1시간 30분 동안 정신없이 전달된다. 나는 매달 이들에게 1500만 원이 넘는 급여를 지불한다. 하지만 그 두 배를 줘도 아깝지 않은 투자다.
∴ 보통 전국 30위권 안에 드는 정상급 스타 강사들의 강의 관련 지출 비용은 최근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한 달에 평균 2000만 원 정도를 쓴다. 하지만 인터넷 강의의 보편화, 대기업들의 사교육 시장 진출 등으로 스타 강사들의 몸값이 수직상승해 강의 보조 인력에 대한 지출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한 스타 강사는 올해 초 학원 이적료로만 150억 원을 받아 화제가 됐다.
○ 16:00
스튜디오에서 인터넷 강의를 녹화하는 시간. 하루의 성패를 좌우하는 피크 타임이다. 강의 내용은 물론 몸짓, 표정 하나하나까지 초 단위로 쪼개 준비해도 카메라는 여전히 어렵다. 속이 울렁거릴 때면 집에 있는 아이들 얼굴을 떠올린다. 또 가장 만족스러웠던 내 강의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이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실 처음 5분만 지나면 거칠 것이 없다. 2시간 녹화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강의에 흠뻑 취한다. 한 학생은 내 강의에 대해 “개그맨보다 웃기면서 목사님 설교만큼 믿음이 간다”고 했다. 한 방송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엔 차분한데 방송만 시작되면 신들린 사람 같네요.”
난 학원가에 흔한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이니셜)’ 출신도 아니다. 외모가 특출 나지도 않다. 하지만 강의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자칫 흐름에서 뒤지거나 입소문이 잘못 나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곳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오직 하나, 실력이다.
∴ 학원가 초기 진입 시장에선 이른바 ‘스펙’이 유리하게 작용한다. 서울대 출신 강사의 경우 같은 조건에서 시작할 때 20∼30%가량 프리미엄을 얻는다. 특히 학생보다는 학부모, 학원가보다는 과외 시장에서 스펙 좋은 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범 보좌관은 “소위 억대 강사가 되는 단계로 들어가면 스펙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고, 강의 내용 및 전달능력 등의 비중이 커진다”고 말했다.
○ 19:30
강의개발팀과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바로 콘텐츠 개발 회의에 들어간다. 내일 강의 준비는 물론 교재 준비까지 한창이라 모두 신경이 날카롭다. 교재는 세 달에 한 번은 새로 낸다. 나태해지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이 바닥이다.
○ 22:30
퇴근길에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 간다. 눈꺼풀이 아무리 무거워도 운동을 거를 순 없다. 스타 강사에겐 ‘자기’가 없다. 친구를 만날 시간도, 술 한번 거하게 취할 여유도, 치과에 갈 새도 없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한 스타 강사에게 운동은 필수.
○ 24:00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잠들었다. 씻고 다시 노트북을 켠다. 인터넷에 올라온 학생들의 냉정한 평가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자기반성’이 아닌 ‘자아비판’의 시간. 잠깐 TV를 본 뒤 오전 2시 경 잠자리에 든다. 꿈에라도 강의하는 모습이 나오면 피곤하다. 기도하며 잠이 든다. ‘차라리 아무 꿈도 꾸지 않았으면….’
∴ 앞의 설문조사에서 ‘학원 강사로서 나의 스트레스 지수’(0∼10점. 점수가 높을수록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를 묻는 말에 30명 가운데 ‘6∼8점’과 ‘9∼10점’이 각각 14명과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강사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란 뜻이다. ‘3∼5점’과 ‘0∼2점’은 각각 4명과 2명에 그쳤다.
■ 박봉 강사 박훈근 씨(가명)의 24시
“아들아, 학원 못보내줘 미안하구나”
○ 08:00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킨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더 무겁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어디가 안 아프길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하루를 쉬면 가족들이 길바닥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절박함. 이런 고민 없이 아침 먹고 옷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 08:30
집을 나서면서 아들 영준이(가명·6) 얼굴을 본다. 아들은 학원을 안 다닌다. 아니, 사실 못 다닌다. 그나마 다니던 영어학원도 한 달 20만 원이 아까워 그만두게 했다. 명색이 학원 강사인 아빠인데도 아이에게 뭘 가르쳐 줘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삶이 빠듯한 게 핑계라지만 아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출근길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옥철’. 지하철 안 광고판에 끼워진 학원 전단이 눈에 띈다. ‘학원 강사 모집. 월 300만 원 보장.’ 입으론 “분명 순진한 강사들을 ‘낚시질’ 하려는 과대광고”라고 욕을 하면서도 손으론 메모지를 꺼내 전화번호를 적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 09:30
서울 중랑구에 있는 A보습학원에 도착. 이 학원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국어를 가르친 지 1년이 넘었다. 강사는 원장을 포함해 4명. 한 달 수입은 150만 원 남짓. 사실 전에 있던 학원에선 적어도 200만 원은 챙겼다. 하지만 가르치는 학생 수(80명가량)에 비하면 너무 적은 금액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장에게 불만을 표시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혼자 나서느냐”는 반응이었다. 원장이 수강료를 속이고 강사 돈을 떼먹는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몇 번 충돌이 있은 뒤 미련 없이 학원을 그만뒀다.
“월급 없이 학생 수에 따라 무조건 7 대 3(강사가 3)으로 나눈다”는 말에 솔깃해 지금 학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너무 순진했다. 중학생 한 명당 수강료는 한 달에 15만 원. 다 합쳐도 수강생이 30명을 넘지 않아 한 달 150만 원을 벌기도 힘든 구조다. 그나마 오전, 오후, 저녁 최소한 9시간 이상 쉬지 않고 일할 때 얘기다.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건 아이들의 태도.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별로 없다. 원장은 “학군이 좋지 않은 데다 그나마 좀 (공부)하는 애들은 큰 학원에 가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기 때문”이라지만 답답하다. 의욕 없는 아이들 때문에 좀 더 좋은 강사가 되려는 내 의지 역시 없어졌다면 핑계일까.
○ 14:30
점심 먹고 잠깐 짬을 내 습관처럼 e메일을 체크한다. 그동안 조건이 좋은 전문학원과 대형학원에 낸 이력서만도 수백 통. 언제나 그렇듯 답장은 없다. 스타 강사들은 대체 외계에서 온 사람들인가. 얼마 전 뉴스에서 들은 스타 강사의 탈세 소식이 새삼 다른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 21:00
수업이 끝나고 대기업에 다니는 대학 동창을 만났다. 재학 시절 난 이른바 ‘운동권’ 학생이었다. 당시엔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졸업하고 보니 자격증 하나 없는 신세. 막노동을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는 선배 추천으로 학원가에 몸담게 됐고,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저녁을 먹은 뒤 친구는 “학원 강사는 돈 많이 번다면서? 밥값은 네가 내라”며 웃는다. 자신이 나보다 4배 이상 더 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강의 자판기’란 사실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지갑을 연다.
○ 23:00
아내 말곤 아무도 모르는 ‘일터’로 나간다. 바로 대리운전 기사. 도저히 생계가 어려워 반 년쯤 전 시작했다. ‘풀타임’은 아니지만 일이 많을 땐 오전 4시까지도 한다. 수입에 큰 보탬은 안 되지만 ‘뭐라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좀 놓인다.
○ 03:00
축 늘어진 어깨로 집에 들어선다. 아내와 아이가 깰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자기 전 잠시 노트북을 켜 포털사이트에 접속한다. 회원만 10만 명이 넘는 학원 강사 커뮤니티엔 또 이런 게시물이 올라 있다. “강의 하러 왔더니 학원이 텅 비었다. 원장이 돈을 들고 날랐다.”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온다.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왜 웃음이 나올까. 이런 생각을 더 하기엔 몸이 너무 무겁다. 쓰러지듯 침대에 눕는다. ‘내일 하루도 건강하길….’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영어학원계의 대부로 불린 이익훈 전 ‘이익훈 어학원’ 원장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고정된 자세로 하루 10시간 이상 강의를 하다 전립샘암으로 2008년 사망했다. 족집게 논술 강의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조진만 전(前) 메가스터디 부사장 역시 2001년 과로로 숨졌다.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50)는 “불규칙한 생활, 과도한 스트레스로 스타 강사들의 건강은 일반인 평균보다 3배 이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 드레스 룸에 있는 옷장을 연다. 각종 의류와 구두, 스카프, 시계 등이 빼곡히 정돈돼 있다. 스타 강사는 연예인이다. 사춘기 학생들이 고객이자 팬이다. 따라서 외모는 곧 경쟁력. 나 역시 패션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이틀에 한 번꼴로 피부 관리실에 간다.
∴ 연예인처럼 이미지를 관리하려는 학원 강사들이 늘면서 화장법, 의상 코디네이션을 도와주는 ‘학원 강사 매니지먼트’ 업체까지 생겨났다. 서울에만 10개가 넘는 업체가 성업 중이다.
○ 07:00
학원에 출근하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건다. 산 지 두 달 된 독일제 고급 세단. 아직 야외로 드라이브 한 번 못 나갔다. 그래도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꿈이었던 기자 시험에 합격했더라면 지금 이 차를 만질 수 있기나 했을까.’
∴ ‘O2’가 강남구 대치동 학원 강사 30명(월평균 수입이 1000만 원 이상인 강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원 강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많은 수입’(15명)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교육자로서 자긍심’(6명), ‘노력한 만큼 얻는 직업 특성’(5명), ‘가르치는 즐거움’(3명), ‘자유로운 시간 활용’(1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 08:00
출근길에 하루 일과를 머릿속에 그려 본다. 항상 비슷한 일과지만 강의를 떠올리면 언제나 식은땀이 난다. 한 번 삐끗하면 언제 B급 강사로 떨어질지 모르는 전쟁터. 문득 “‘일타 강사’(마감 시 과목마다 수강생이 가장 먼저 차는 대표 강사) 자리는 오르기보다 지키는 게 10배 이상 어렵다”던 선배 강사의 얘기가 떠오른다. 그만큼 냉정한 세계다.
∴ 앞의 설문조사에서 ‘학원 강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묻는 질문에 30명 가운데 가장 많은 13명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꼽았다. 그 다음은 ‘과도한 업무량’(6명), ‘긴장의 연속’(5명),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4명), ‘주변의 인식’(2명) 순이었다.
첫 강의부터 전쟁이다. 200명 정원을 꽉꽉 채운 오프라인 강의 3개가 70분 강의, 15분 휴식 간격으로 쭉 이어진다. 오프라인은 수입의 30%를 차지하는 비중 있는 부분이지만, 온라인 강의를 위한 준비 과정이란 점에서 신경이 더욱 쓰인다.
∴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의 경력 7년차 베테랑 상담실장은 “오프라인 수업을 듣는 학생 가운데 95% 이상이 수업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그 강사는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온라인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전천후 강사’라고 설명했다.
▼ 일타강사 “돈은 많은데 미래가 왜 이리 불안한지” ▼
○ 12:30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치우면서 오늘 강의에서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부분을 떠올린다. 날것처럼 신선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신무기’를 장착하는 건 선택이 아닌 의무다.
∴ 최고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서울시 교육정책보좌관으로 ‘보직 변경’한 이범 씨는 “학생들을 10분 안에 사로잡지 못하면 스타 강사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통 강사들은 하나의 접근방법밖에 없지만, 스타 강사는 적어도 3개 이상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며 “그래서 어떤 상황이 와도 흐름을 파악해 유연하게 맞춤형 강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14:00
강남 캠퍼스로 이동. 강남, 특히 대치동은 학원 강사들에겐 ‘소리 없는 전쟁터’다. 예전에 한 동료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주택가라 서울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 대치동이라잖아. 근데 난 이곳에만 오면 머리털이 곤두서. 전날 2시간밖에 못 자도 여기 공기만 맡으면 하품할 여유까지 사라진다니까….”
∴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1∼3월) 서울 강남 지역에서 새로 생겨난 학원만 126곳이다. 하루 한 개꼴로 새로운 학원이 문을 열었다는 뜻이다.
도착하자마자 6명으로 구성된 강의개발팀이 붙는다. 교육 관련 신문기사 스크랩에서부터 전날 강의콘텐츠에 대한 학생들 반응, 수만 건 이상 인터넷에 올라온 질문 가운데 추려낸 것들, 강의 분위기를 띄울 만한 새로운 유머, 얼굴 표정이나 몸짓에 대한 리뷰까지 브리핑을 받는다. 이 모든 게 1시간 30분 동안 정신없이 전달된다. 나는 매달 이들에게 1500만 원이 넘는 급여를 지불한다. 하지만 그 두 배를 줘도 아깝지 않은 투자다.
∴ 보통 전국 30위권 안에 드는 정상급 스타 강사들의 강의 관련 지출 비용은 최근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한 달에 평균 2000만 원 정도를 쓴다. 하지만 인터넷 강의의 보편화, 대기업들의 사교육 시장 진출 등으로 스타 강사들의 몸값이 수직상승해 강의 보조 인력에 대한 지출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한 스타 강사는 올해 초 학원 이적료로만 150억 원을 받아 화제가 됐다.
○ 16:00
스튜디오에서 인터넷 강의를 녹화하는 시간. 하루의 성패를 좌우하는 피크 타임이다. 강의 내용은 물론 몸짓, 표정 하나하나까지 초 단위로 쪼개 준비해도 카메라는 여전히 어렵다. 속이 울렁거릴 때면 집에 있는 아이들 얼굴을 떠올린다. 또 가장 만족스러웠던 내 강의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이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실 처음 5분만 지나면 거칠 것이 없다. 2시간 녹화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강의에 흠뻑 취한다. 한 학생은 내 강의에 대해 “개그맨보다 웃기면서 목사님 설교만큼 믿음이 간다”고 했다. 한 방송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엔 차분한데 방송만 시작되면 신들린 사람 같네요.”
난 학원가에 흔한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이니셜)’ 출신도 아니다. 외모가 특출 나지도 않다. 하지만 강의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자칫 흐름에서 뒤지거나 입소문이 잘못 나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곳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오직 하나, 실력이다.
∴ 학원가 초기 진입 시장에선 이른바 ‘스펙’이 유리하게 작용한다. 서울대 출신 강사의 경우 같은 조건에서 시작할 때 20∼30%가량 프리미엄을 얻는다. 특히 학생보다는 학부모, 학원가보다는 과외 시장에서 스펙 좋은 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범 보좌관은 “소위 억대 강사가 되는 단계로 들어가면 스펙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고, 강의 내용 및 전달능력 등의 비중이 커진다”고 말했다.
○ 19:30
강의개발팀과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바로 콘텐츠 개발 회의에 들어간다. 내일 강의 준비는 물론 교재 준비까지 한창이라 모두 신경이 날카롭다. 교재는 세 달에 한 번은 새로 낸다. 나태해지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이 바닥이다.
○ 22:30
퇴근길에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 간다. 눈꺼풀이 아무리 무거워도 운동을 거를 순 없다. 스타 강사에겐 ‘자기’가 없다. 친구를 만날 시간도, 술 한번 거하게 취할 여유도, 치과에 갈 새도 없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한 스타 강사에게 운동은 필수.
○ 24:00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잠들었다. 씻고 다시 노트북을 켠다. 인터넷에 올라온 학생들의 냉정한 평가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자기반성’이 아닌 ‘자아비판’의 시간. 잠깐 TV를 본 뒤 오전 2시 경 잠자리에 든다. 꿈에라도 강의하는 모습이 나오면 피곤하다. 기도하며 잠이 든다. ‘차라리 아무 꿈도 꾸지 않았으면….’
∴ 앞의 설문조사에서 ‘학원 강사로서 나의 스트레스 지수’(0∼10점. 점수가 높을수록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를 묻는 말에 30명 가운데 ‘6∼8점’과 ‘9∼10점’이 각각 14명과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강사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란 뜻이다. ‘3∼5점’과 ‘0∼2점’은 각각 4명과 2명에 그쳤다.
■ 박봉 강사 박훈근 씨(가명)의 24시
“아들아, 학원 못보내줘 미안하구나”
○ 08:00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킨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더 무겁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어디가 안 아프길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하루를 쉬면 가족들이 길바닥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절박함. 이런 고민 없이 아침 먹고 옷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 08:30
집을 나서면서 아들 영준이(가명·6) 얼굴을 본다. 아들은 학원을 안 다닌다. 아니, 사실 못 다닌다. 그나마 다니던 영어학원도 한 달 20만 원이 아까워 그만두게 했다. 명색이 학원 강사인 아빠인데도 아이에게 뭘 가르쳐 줘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삶이 빠듯한 게 핑계라지만 아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출근길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옥철’. 지하철 안 광고판에 끼워진 학원 전단이 눈에 띈다. ‘학원 강사 모집. 월 300만 원 보장.’ 입으론 “분명 순진한 강사들을 ‘낚시질’ 하려는 과대광고”라고 욕을 하면서도 손으론 메모지를 꺼내 전화번호를 적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 09:30
서울 중랑구에 있는 A보습학원에 도착. 이 학원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국어를 가르친 지 1년이 넘었다. 강사는 원장을 포함해 4명. 한 달 수입은 150만 원 남짓. 사실 전에 있던 학원에선 적어도 200만 원은 챙겼다. 하지만 가르치는 학생 수(80명가량)에 비하면 너무 적은 금액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장에게 불만을 표시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혼자 나서느냐”는 반응이었다. 원장이 수강료를 속이고 강사 돈을 떼먹는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몇 번 충돌이 있은 뒤 미련 없이 학원을 그만뒀다.
“월급 없이 학생 수에 따라 무조건 7 대 3(강사가 3)으로 나눈다”는 말에 솔깃해 지금 학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너무 순진했다. 중학생 한 명당 수강료는 한 달에 15만 원. 다 합쳐도 수강생이 30명을 넘지 않아 한 달 150만 원을 벌기도 힘든 구조다. 그나마 오전, 오후, 저녁 최소한 9시간 이상 쉬지 않고 일할 때 얘기다.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건 아이들의 태도.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별로 없다. 원장은 “학군이 좋지 않은 데다 그나마 좀 (공부)하는 애들은 큰 학원에 가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기 때문”이라지만 답답하다. 의욕 없는 아이들 때문에 좀 더 좋은 강사가 되려는 내 의지 역시 없어졌다면 핑계일까.
○ 14:30
점심 먹고 잠깐 짬을 내 습관처럼 e메일을 체크한다. 그동안 조건이 좋은 전문학원과 대형학원에 낸 이력서만도 수백 통. 언제나 그렇듯 답장은 없다. 스타 강사들은 대체 외계에서 온 사람들인가. 얼마 전 뉴스에서 들은 스타 강사의 탈세 소식이 새삼 다른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 21:00
수업이 끝나고 대기업에 다니는 대학 동창을 만났다. 재학 시절 난 이른바 ‘운동권’ 학생이었다. 당시엔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졸업하고 보니 자격증 하나 없는 신세. 막노동을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는 선배 추천으로 학원가에 몸담게 됐고,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저녁을 먹은 뒤 친구는 “학원 강사는 돈 많이 번다면서? 밥값은 네가 내라”며 웃는다. 자신이 나보다 4배 이상 더 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강의 자판기’란 사실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지갑을 연다.
○ 23:00
아내 말곤 아무도 모르는 ‘일터’로 나간다. 바로 대리운전 기사. 도저히 생계가 어려워 반 년쯤 전 시작했다. ‘풀타임’은 아니지만 일이 많을 땐 오전 4시까지도 한다. 수입에 큰 보탬은 안 되지만 ‘뭐라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좀 놓인다.
○ 03:00
축 늘어진 어깨로 집에 들어선다. 아내와 아이가 깰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자기 전 잠시 노트북을 켜 포털사이트에 접속한다. 회원만 10만 명이 넘는 학원 강사 커뮤니티엔 또 이런 게시물이 올라 있다. “강의 하러 왔더니 학원이 텅 비었다. 원장이 돈을 들고 날랐다.”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온다.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왜 웃음이 나올까. 이런 생각을 더 하기엔 몸이 너무 무겁다. 쓰러지듯 침대에 눕는다. ‘내일 하루도 건강하길….’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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