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개혁은 머리가 아니라 우리 몸에서시작되는 것
오늘, 우리 대학의 크리틱 현장
요새 졸업 전시회의 최종 평가와 크리틱이 한창이다. 지난 5년간의 고뇌와 노력이 담긴 그림과 모형 앞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려 애쓰고, 외부 크리틱은학생의 작은 흔들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예리한 시선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학생과 크리틱의질의응답의 공방 속에서 지도 교수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교차되고, 심지어 안타까운 마음에 제자 대신답변을 해 보기도 한다. 건축가인 양 말쑥하게 차려입은 학생은 자신의 작품을 열심히 팔아 보려 하지만, 선배 건축가들 앞에서 위축되고 목석처럼 굳어버려 무엇을 말해야 할지조차 잊고 만다. 외부 크리틱으로 초청된 건축가들 역시 건축주의 역할을 해야 할지, 선생의역할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질문과 충고가 난무한다. 졸업 전시회와 최종 평가 및 크리틱의 자리는, 학생들에게는 예비 건축가로서 자신의 ‘건축가적 가능성’을 평가받는 자리라면, 지도 교수에게는 자신의 ‘교육적 역량’을 학생들의 작품을 통해 평가받는 자리이고, 외부크리틱에게는 자신의 ‘건축가적 역량’을 학생과 지도 교수 앞에서 평가받는 자리로 여겨진다.
오전에 시작된 크리틱은 점심을 건너뛰고 한낮을 지나 어느새 한밤 중이다. 쏟아지는 졸음을 카페인음료로 버텨내며 어렵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풀고 있는 학생과, 진한 커피를 연신 들이키며 집중력을 잃지않으려는 외부 크리틱 간에는 치열한 건축적 담론이 오고간다. 한편으론 지도 교수와 외부 크리틱이 만든‘건축가의 벽’ 뒤에서 몇 주 밤샘 작업에지친 학생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고, 몇몇은 아예 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잠을 청하고 있기도하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때로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 마지막 학생이 발표를 마치게 되면, 지도 교수의 신호에 따라 사라졌던학생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멀쑥하게 차려입은 오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피로에 지친 학생들은 잠에 취해 좀비처럼 다시 모여든다. 외부 크리틱이차례로 돌아가면서 평가와 응원의 말을 이어가고, 지도 교수의 감사의 말에 학생들의 박수로 긴 하루가마무리된다. 외부 크리틱은 마음에 드는 학생에게다가가 리크루팅을 염두에 둔 채 졸업 후 계획을 물어보고, 지도 교수는 그림과 모형에 담긴 아이디어를제대로 발표하지 못한 학생에게 아쉬움을 토로한다. 학생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주섬주섬 자신의작품들을 모아 어둠 속으로 하나둘 사라진다. 모두가 떠난 빈 공간에는 아쉬움만이 진하게 남는다.
20년 전, 예일대학교의 크리틱 현장
20년 전 나는 예일대학교에서 첫 번째 크리틱을 맞이하고 있다. 온갖 도면과 스케치로 가득 채워진벽과 다양한 모형들이 늘어선 공간 사이로 흰색 셔츠 소매를 반쯤 감아올린 학생이 발표 리허설을 하고 있고, 외부크리틱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편안한 의자에 자리잡는다. 스튜디오 학생들은 높은 제도 의자를 끌어와주변에 진을 친다. 지도 교수의 신호와 함께 발표가 시작되고, 그림과모형을 번갈아 보면서 학생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풀어 내고, 중간중간 크리틱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대답한다. 학생과 크리틱 간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던 찰나, 뒤쪽에서 질문이날아온다. 같은 스튜디오 학우의 질문이다. 아무도 이상하게생각하지 않는다. 발표하던 학생은 크리틱의 질문인 양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그 답변을 받아 또 다른 크리틱이 질문을 던진다. 질문과 답변이꼬리를 물자 다른 학우들도 참여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발표는 토론처럼 느껴진다. 지도 교수와 외부 크리틱, 발표하는 학생과 듣는 학생, 모두 매너를 지킨다. 선생과 제자,선배와 후배의 상하 관계가 아닌, 동료 건축가를 대하듯 행동한다. 크리틱이 진행되는 동안엔 조는 사람도, 크리틱 공간을 떠나는 사람도없다. 스튜디오 학생들은 동료 학생들의 발표를 유명 건축가의 강연인 것처럼 집중해서 듣는다. 저녁 즈음이 되어 크리틱이 마무리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밖은 아직도밝다. 마지막 발표가 끝났지만, 크리틱의 열기는 아직 가시지않았다. 학생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외부 크리틱에 붙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외부 크리틱 역시 최선을 다해 답해 준다. 지도 교수가 준비된 장소에서이 분위기를 이어가자고 한다. 크리틱은 어느새 파티로 변한다.
대한민국 설계 사무직 사원의 씁쓸한 자화상
대한민국의어느 설계사무소. 벌써 공모전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가끔공모전에 당선되어 짧은 휴식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주말을 잊고 일한 지 한참이다. 거듭된 밤샘으로 몸이 얼마나 버텨낼지 걱정이다. 몸이 축나는 만큼금전적인 보상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보너스는커녕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학부 시절 기대했던 멋진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면 비전을 보고 좀더 참아보겠지만, 철학도 깊이도 없이 돈 되는 프로젝트에 영혼을 판 지 벌써 몇 년째다. 어느유명 교수는 설계비 정상화만이 살길이라며 강연마다 주장을 하고, 어느 유명 건축가는 디자인의 가치를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문화 수준을 개탄하는 글을 매체마다 올린다. 게다가 관련 협회는 정부의 건축경기 부양책을 보도하며 경기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내겐모든 게 공염불처럼 들린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그저 나의 주말을 다시 찾고 싶을 뿐이다. 밤샘이 일상화되지 않은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 영혼뿐 아니라 몸과 마음까지 모두 사라지고 정말 좀비로 살아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갑자기 건축을 그만둔 동기가 생각난다. 디자인을 향한 열의에도 불구하고설계 성적이 좋지 않았던 그 친구는, 일반 대기업에 입사해 보너스며 휴가며 나는 상상도 못하는 혜택을꼬박꼬박 누리고 있다고 한다. 부럽다. 지도 교수와 외부크리틱의 칭찬과, A+로 번쩍이는 설계 성적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밤샘과 설계비 덤핑은 몸으로 학습된 것이 아닐까?
건축계의상황이 나빠도 너무 나쁘다.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을 탓하기도 하고, 제 살 깎아 먹는 설계비 덤핑 탓을 하기도 하고, 세계적 불황을탓하기도 하면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건축계의 다양한 노력이 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 일로이다. 혹시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닐까? 군대가남자를 사회화시키는 중요한 학습 장소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건축 교육 시스템이 설계비를 제대로못 받으며 밤샘을 일상화하는 잘못된 건축 현장을 미리 학습시키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머리로 밤샘 작업과설계비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우리의 몸은 이미 밤샘과 설계비 덤핑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학습된것은 아닐까?
건축교과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대부분의 경우 건축 설계 과목은5~6학점으로, 기타 전공과목은 2~3학점으로배정되어 있다. 설계 과목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학점 분배인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기타 전공과목이 2시간에 2학점, 3시간에 3학점으로 학점과 시수/시간이 동일한 반면, 건축 설계 과목은 5학점에 10시간, 6학점에 12시간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학점 대비 등록금을 내는 학생의 입장에서나, 강사료를 시간이 아닌학점에 의거하여 주는 대학의 입장에서는 공짜로 서비스를 더 받는 것으로, 선생의 입장에서는 학점 대비더 많이 교육시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10시간 또는 12시간의 학습을 하고도 반밖에 학점 인정을 못 받는것이다. 학교에서 무려 5년 동안 시간 대비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한 디자인을, 반의 가치로 인정받도록 학습 당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선생들은 지정된 수업 시간을 훨씬 넘겨 밤 10시, 11까지 수업을 이어가는 것을 ‘열의’로 포장하여 당당하게 자랑하기도 하는데, 이것을감안하면 학점으로 인정받는 학생 작품의 가치는 삼분의 일, 아니 사분의 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또한 더 많이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지도 교수의 강박적 욕심은, 정상적으로시간을 들여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과제를 부여하게 되고, 학생들의 밤샘 작업은 매 과제마다반복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떤 선생들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밤샘 작업은 당연한 것처럼 무용담을늘어놓곤 한다. 1학년 첫 학기부터 과제에 치여 밤을 새지 않고는 도저히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는 일과가 반복되고, 과제마다 학기마다 선배로부터 선생으로부터 밤샘 작업이 당연한 것처럼 세뇌 당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건축=밤샘이란 등식이 우리 몸에 각인된다. 머리로는 밤샘 작업의 불합리함을 이해하지만, 5년이 지나면 내 몸의세포 하나하나가 밤샘을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밤샘이 일상화되며 내 일의 가치는 더욱 떨어질수밖에 없다. 5학점에 10시간을 투자하는 설계가 50%의 가치를 인정받는 거라면, 열성적인 선생 덕분에 15시간을 투자하게 되면 30%, 밤새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일주일에 50시간을 투자하면 10%를 인정받는 셈이다.
욕심을 덜어 내고 여유와 휴식을 가져야 할 때
우리는건축 교육을 통해 디자인의 가치를 증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가치를 형편없이 낮추고 있다. 정해진 시간없이 밤늦게까지 진행되는 과도한 크리틱과 최종 평가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열정적인 외부 크리틱으로 엿가락처럼늘어진 시간 때문에, 때로는 “내가 모든 것을 평가해야한다”는 지도 교수의 욕심으로과도하게 편성된 학생 수 때문에, 시간의 가치와 더불어 디자인의 가치도 끝없이 희석된다. 특히 학생 평가를 자신의 평가로 착각하는 선생으로 말미암아 해당 스튜디오 학생들은 추가로 작업을 더 하도록독려 받게 되는데, 이는 공평한 평가와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 모형 제작과 칼라 이미지를 금지하는공모전 요강에도 불구하고 굳이 모형과 칼라 이미지를 준비하여 심사위원의 환심을 사려는 설계사무소의 비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선생들이 욕심을 좀 덜어 내야 할 때이다. 정성적 교육의 질을 논하기 전에 정량적 교육의 가치를 심각하게들여다봐야 한다. 밤늦게까지 수업하고 자정까지 크리틱하는 것이 더이상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어진 시간을 최적화하여 사용하는 것이 자랑거리여야 한다. 모든학생에게 밤샘을 강요하는 교과 과정도 개선되어야 한다. 휴식이 필요한 것은 몸만이 아니다. 마음 역시 휴식이 필요하다. 창의적인 생각도 휴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건축계의 모든 문제가 ‘여유와 휴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일까? 일단 2학기 설계 과정부터 덜어 낼 생각이다. 나부터 ‘여유와 휴식’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진정한 개혁은 머리가 아니라 우리 몸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나는굳게 믿는다.
글: 조한(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 출처: <와이드AR> 2013년 7/8월호 19p-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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