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건축물 안에서 생활하지만 정작 어떤 사람이 이 공간을 설계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건축물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는 사람을 건축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전문가가 되는지, 그 현실의 속내가 어떠한지 들여다본 독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건축가, 그들은 누구인가.
영화·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건축가
가끔 건축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있다. 건축계 밖에서 건축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영상 속에 드러나고 있을 터이니 몇 개 들추어보자. 먼저 지난해 여름, 꽃중년 바람을 몰고 왔던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자. 장동건이 연기한 주인공 도진은 우아하고 까칠한 건축가로 등장했다. 그는 집에서 와인과 치즈를 먹으며 건축 모형을 만들고 평일 대낮에도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본다. 현실의 건축가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매우 럭셔리한 삶이다. 한편 그는 자신이 번 돈을 가족들과 나눠 쓰기 싫어 결혼도 하지 않은 이기적인 독신주의자이기도 하다. 드라마 내내 여주인공 서이수, 혹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려는 독선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드라마 속에서 비슷한 건축가가 또 있었다. 2009년에 방영된 <결혼 못하는 남자> 속의 지진희가 그랬다. 그는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에도 각을 맞춰 정돈된 식탁에다가 접시에 튄 육즙마저 닦아내는 결벽증을 발휘한다. 가령 스파게티를 먹으며 여자에게 건넨 대화는 이런 식이다. “스파게티는 보통 직경 1.9㎜ 정도 되는데, 이건 보기에도 좀 가늘죠?” 도면 위에서 세세한 치수에까지 잔신경을 써야 하는 건축가의 소심함이 묻어나는 장면이었다. 그 중 압권은 불꽃놀이 장면. 여의도 불꽃축제를 즐기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테이블과 의자에 와인까지 세팅하고 망원경으로 불꽃놀이를 본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어울리기 싫어하는 주인공의 성격이 코믹하게 드러났다.
이들 드라마에서 건축가들은 하나같이 나이답지 않은 경제력에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대중문화를 만드는 연출가나 작가들에게 건축가는 이렇게 화려한 삶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나보다.
그보다 은근히 찔리는 것은 드라마를 만든 이들이 건축가들에게서 찾아낸 고집과 개인주의적 취향이다. 어디서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거나 편집증에 가까운 소심함을 드러내는 것은 건축가들의 작업 환경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직업병일 수도 있겠다. 건축하는 이들의 면전에서는 세심하다거나 꼼꼼하다고 말해 주지만, 그 속내로는 소심하다, 혹은 한 술 더 떠 ‘찌질하다’고 평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성격 말이다. 필자에게도 그런 말을 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드라마 작가의 눈이 한편으로는 정확했다. 때로 이러한 성격은 세상과의 소통에 둔감하거나 혹은 폐쇄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건축이 가장 밀접해야할 사회와 단절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지난해 봄, 우리를 첫사랑의 기억으로 떨게 했던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건축가가 등장했다. 엄태웅이 나오는 첫 장면, 그는 밤샘 작업 끝에 설계사무실 책상 위에서 쪼그려 자고 있다. 선배의 채근에 이어지는 그의 대사, “나도 퇴근이란 걸 좀 합시다. 이틀 동안 집을 못 갔네!” 오늘도 수많은 건축사무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과 싱크로율 100%, 아주 현실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의 감독이 건축과를 다녀서 건축계의 실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멀고도 험난한 건축학도의 길
자, 이제부터 이런 건축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따라가 보자. 요즘 좀 나아지긴 했지만 예전에는 대학 진학 시 건축학과를 선택하는 고등학생들 중 상당수는 정작 건축학과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수년 전 방송에서 집을 고쳐주는 <러브하우스>가 방영된 적이 있다. 그 인기에 힘입어 덩달아 건축 관련 학과에 많은 학생들이 몰렸던 적이 있다. 올해에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효과가 나타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건축학과는 설계 과제가 많아 야간작업이 빈번하기로 유명하여 이 힘든 교육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학과로 전과하는 학생이 유독 많기도 하다. 필자도 종종 새벽 한시 두시를 넘겨 퇴근할 때가 있는데, 복도 중간의 학생 휴게실에서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 먹는 학생들을 만나곤 한다. 다이어트 방해의 주범으로 이런 야식을 꼽는 여학생의 푸념을 듣기도 하니 건축학과와 야간작업은 뗄 수 없나보다. 미국의 한 건축학과에 떠돈 낙서를 소개하겠다. 제목은 “당신은 이럴 때 건축학과에 다닌다고 생각한다”.
·잠자려고 할 때 다른 사람의 새벽 자명종 소리를 듣는다.
·48시간 안에 갖고 있는 모든 CD 음악을 들어본 적 있다.
·학교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세수한다.
·실제 사람을 찍은 사진보다 건물 사진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을 한 끼에 다 해결한다.
수도승도 아니면서 세상과는 좀 동떨어진 듯 살고 있는 건축학과 학생들의 생활을 실감나게 콕콕 찍어 놓았다. 건축학과 교육 중 설계 디자인 수업이 핵심에 놓이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왕왕 그 비중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우가 있으니 필자도 반성한다. 이렇게 공부한 학생들이 건축가가 되어 앞선 드라마의 지진희 같은 은둔형 성격이 되지 않도록….
건축학과를 졸업하여 건축가가 되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다.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사람을 법적으로 ‘건축사’라고 부르는데, 최근 건축사법의 개정으로 그 절차가 더욱 강화되었다. 대략 그 과정을 요약하면, 5년 이상의 건축학 학위과정이 개설되어 인증을 받은 대학이나 혹은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3년 이상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수련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건축사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 복잡한 과정을 기술해야 하는 필자도 숨이 차다. 부디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먼저 건축학과의 학제를 5년 이상으로 한정해 놓은 것부터 살펴보자. 이 제도의 배경에는 세계화, 혹은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를 건축 설계 분야에서도 관철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그러나 서비스 시장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려는 시도는 다자간협상의 한계로 말미암아 지지부진 폐기되었다. 이를 대신하여 각 국가별로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현 상황에서 건축 교육에서의 세계적 기준을 만들고 이를 인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변호사, 의사, 약사 등 지식산업 전반의 분야에서 각국의 여건에 따라 양자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유독 건축 설계 분야에서만 세계건축사연맹(UIA)의 주도하에 획일적 기준을 만들어 놓고 이를 각국에 강제하고 있다. 이는 세계시장을 향해 권력을 휘두르려는 시대착오적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다. 건축을 달리 부르면 부동산이다.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다. 땅에 고착되어 있는 건축은 해당 국가의 기후, 문화, 사회적 법제 등과 뗄 수 없는 관련을 갖는다. 이렇게 지역의 성격이 절대적 요인을 차지하는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동일한 국제적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도대체 온당한 일인가? 한편 이를 그대로 수용하여 건축교육의 큰 틀을 5년제로 확정해 버린 우리의 모습은 또 얼마나 서글픈가. 5년제를 섣부르게 수용한 제도 역시 방죽 터지자 제 논에 물부터 대려는 이기심이거나 완장 차기의 욕망에 사로잡혀 학생들의 고충을 볼모로 삼은 폭력이다
‘신사의 품격’ 장동건을 상상하지 말라
실제로 미국의 건축 교육도 각 학교 및 지역에 따라 다양한 학제와 교육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5년제 학부과정이나 혹은 4년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 2년을 마쳐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4+2년제, 4+1.5년제 혹은 5년제의 건축석사 학위제 등이 있어 학생들의 선택 폭이 넓다. 오히려 최근 들어 5년제 프로그램을 선택한 대학이 줄어드는 추세가 보이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 학제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3+2년의 대학 과정과 2년 정도의 추가 실무 수련 후 건축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이 시험은 전문적 경험과 지식을 판단하는 것으로 정당한 과정을 거친 응시자라면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의 학제는 학부 4년과 대학원 2년을 기본으로 한다. UIA의 권고 기준에 맞추기 위하여 학부와 석사과정을 통합하여 대응하고 있다. 한편 유럽지역의 46개국이 참여한 볼로냐 협약은 학사 3년과 석사 2년 과정을 통합하여 5년 만에 신속하게 전문 학위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열어 놓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학제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건축학과가 5년제 학제로 개편되었다. 90년대 말에 4년제로 운영되고 있던 건축(공)학과는 건축가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5년제 건축학과와 건설 엔지니어를 키우는 4년제 건축공학과로 분리되어 재편되었다. 물론 우리도 4년제의 건축학과를 졸업하거나 혹은 건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건축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건축사 시험 응시자격을 갖추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 입학 시 미래의 건축가를 꿈꾸는 대학 지원자가 굳이 4년제 건축학과를 선택하여 졸업 후 다시 대학원을 2년 이상 다녀야 하는 수고를 감내할 리 만무하다. 이에 따라 입시 수요 및 경쟁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내 대부분의 건축학과는 5년제 과정으로 학제를 개편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5년제라는 특수한 제도가 대학의 건축 교육 체제를 획일화하고 다양성을 소거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학과보다 1년을 더 다녀야 하는 건축학과 학생에게 졸업 후 응당한 보상이 주어지는가? 과정이 험하고 길기로야 의과대학생들을 따를 수 없지만, 그들은 이를 마친 후 그만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기에 그 험난함에 대한 볼멘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건축학과 졸업생들의 미래는 신사의 품격을 구가하는 장동건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사실 건설 경기의 침체는 1~2년 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건축 산업의 수요 구조도 포화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5년제 학위과정이 개설되어있는 70여개 이상의 건축학과가 ‘국제적 수준의 건축가’ 후보자를 매년 수천명씩 양산하고 있다. 국내에 이렇게 많은 국제적 건축가가 필요한가? 실제 지역에서 지어지는 근린생활시설이나 중, 소규모의 건물을 설계하는 것도 국제적 인증을 받은 건축가에게 맡겨야 하는 것일까?
대학 5년·수련과정 3년, 그리고 바늘 구멍 자격시험
건축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수 개의 선도대학들과 ‘건축학교육인증원’이 앞장서 추진해 온 건축학과의 5년제는 그동안 어렵게 유지되어 오던 건축 설계 분야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를 외친 몇몇 선도대학들의 격차 벌리기 혹은 흡사 권력기관의 모습으로 오버랩되는 인증원의 완장이 얼마나 힘을 발했는지는 모르겠으되, 그 고충만큼은 오롯이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건축학과를 어렵게 5년 동안 다닌 졸업생의 진로를 보면 36% 정도만이 전공 진로를 살려 건축설계사무소에 취업하고 있다.(2011년, 인증원 통계) 건축가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60%가 넘는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1년을 더 다니도록 만든 것은 학자금과 시간의 손실을 과징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공부가 취미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건축사법에서 정해놓고 있듯, 건축사 시험에 응시하려면 5년제 학위과정을 마치고도 3년 이상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수련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 기간 중에 야근이나 밤샘은 필수 과목이다. 첩첩이 쌓인 고갯길을 변변한 노잣돈도 없이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자, 이제 고난의 행군을 거쳐 비로소 건축사 시험에 응시한다고 하자. 2012년의 건축사 시험에는 4000명 가까이 응시하여 449명만이 합격하였다. 10%가 조금 넘는 합격률이다. 그나마 예년에 비해 조금 올라간 수치다. 합격이 이리 어렵다보니 건축사 시험 대비 학원까지 있다. 강남역 언저리의 학원에 가보면 30, 40대 건축인들이 시험과목에 따라 두꺼운 참고서를 들고 강의를 듣고 있다.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몇 달간 휴직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거의 고시에 가깝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자격시험도 합격률이 90%가 넘는다. 약대를 졸업하고 치르는 약사고시 역시 90% 이상의 합격률을 보인다. 더욱이 약사들은 특별한 수련과정 없이 면허 취득 후 바로 약국을 개업할 수 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나 약사에 비해 건축사가 더욱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건축가의 작업이 무슨 폭발물을 만지는 것도 아닐진대 이렇게 이중, 삼중의 장벽으로 건축사가 되는 길을 바늘구멍으로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건축사가 된다 해도 그 자격이 특별한 대가를 보장해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진입장벽을 높이는 일은 결국 기존 건축계의 권익을 위한 안전장치가 될 따름이다.
한국 건축의 질을 높이려면
건축의 품격을 높이는 것이 몇 년 이상의 교육과정이나 특정한 자격의 부여로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건축을 단순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이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건축가 중 상당수는 정규 건축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다. 근대건축의 거장으로 건축가들 사이에서 신계(神界)의 반열에 올라있는 르 코르뷔제가 다닌 학교는 시계 장식미술을 가르치는 곳이었으며, 1980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할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멕시코 출신의 거장 루이스 바라간은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일본의 건축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어 역시 프리츠커 상을 받은 안도 다다오는 고등학교 졸업 후 트럭 운전사와 권투선수의 경력을 가졌을 뿐 아무런 전문적 건축 교육을 받은 일이 없다. 공공 건축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여 우리 건축계에 뜻 깊은 족적을 남긴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도 생전에 건축사 자격증을 갖지 못했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 지망생에게 5년제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수년의 수련과정을 거친 뒤 바늘구멍 같은 시험을 통과하도록 해야만 건축의 질이 높아진다는 생각을 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건축가의 자질에 대한 평가는 어차피 설계 능력과 작품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건축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 건축 시장이 아닌가. 아무리 훌륭한 건축가도 충분한 시간과 비용이 없다면 엉터리 작품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 현실에서 건축사 진입 장벽을 한사코 높이려는 시도, 그리고 그 성 밖을 떠도는 서글픈 유배자들, 수많은 건축사 예비군을 양성하고 있는 대학교육. 이 모두는 예비 건축가의 시간과 궁핍을 담보로 건축업계와 건축교육 분야가 기득권을 나누고 있는 격에 진배없다.
들추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드라마 <신사의 품격> 속에서 장동건이 일하던 사무실의 실제 배경은 ‘공간 건축사사무소’다. 이 회사도 최근 건축 경기 침체에 이은 경영악화로 부도를 맞고야 말았다. 낯 뜨거운 우리의 자화상 앞에서 슬프도록 씁쓸하다. 고민은 계속 이어진다.
양상현 |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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