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파트'는 한국의 발명품이다. 그것은 서양 단어인 'apartment'와는 단어만큼이나 서로 다른 양식이다. 아파트는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거쳐오고 이룬 모습을 딥대성해서 현재형으로 보여주는 건물형식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 구성원의 대표적인 주거 생활 방식이 되었다.
설과 추석에 고속도로를 메우는 귀성 행렬은 한국 도시 인구의 절대 다수가 어디서 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산업화의 기간 삼십년 동안 세배로 증가한 도시 인구 지표는 결국 이들이 이전에는 모두 농경사회의 씨족 공동체 구성원이었다는 증거다.
씨족 내 결속력은 족외 구성원에 대한 경계심과 비례한다. 이 부정적 경계관계를 해소하는 방법은 반복적인 대면 접촉이나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 고리의 확보다. '누구를 혹시 아세요' 라는 질문은 그 탐색의 시작이다.
씨족 구성원이 해체되어 아파트라는 도시형 주거에 임의 재집결해 이룬 집단은 아파트 구성원 간에서도 부정적 경계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단지, 지역에 이르는 순차적인 부정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증발해 나가는 것이 공공 영역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같은 도시 안에 이질적 시대별 공동체들을 공존시키고 있다. 촌락형 세대와 도시형 세대의 공존은 선거장의 투표 경향에서 시작하여 노래방 곡 선정에 이르는 크고 작은 모습에서 현격한 차이점을 내보인다. 이것이 바로 세대 차이고 세대 간 갈등이다.
세대, 출신 지역, 소득, 교육,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로 엮이면서 극대화된 분리와 갈등은 우리가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사회를 재단한다. 이 극단적인 이분법은 도시 공간의 이용 방식으로도 확연히 표현된다. 사안에 따라 집단적 동맹의 형태를 띠는 새로운 공동체는 다양하게 합종연횡하면서 도시를 갈라놓는다.
도시 공동체 의식의 결여가 제공하는 또 다른 갈등은 건물 내외부 공간 사이의 격차다. 한국은 건물 내부의 장식과 서비스 수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했다. 그러나 현관문 외부는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정글로 방치된 대비가 도시 전체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화되어 있다. 이것을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는 기형, 살풍경, 초현실이다.
주민을 시민으로 바꾸고 촌락을 도시로 개선하는 방식은 도시 생활의 경험과 학습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공간을 요구한다. 도시 공동체를 위한 공간community space은 결국 한국의 아파트가 건강한 사회 체제를 이루기위해 제공해야 할 건축적 장치다. 이것은 개인이 공공public의 한 부분이 되도록 하는 공간적 조건이다. 이것이 없이 시민사회는 형성되기 어렵다. 물리적 도시에 이식된 촌락 시대의 씨족공동체가 파편화되어 존재할 따름이다.
21세기 초반의 한국 사회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씨족 공동체 의식을 지닌 이전 세대의 영향과 도시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한 도덕 기준을 함께 갖춘 새로운 세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 공간을 마당으로 삼아 축제와 시위를 공존시킬 줄 아는 세대는 한국 사회의 잠재력을 가늠하는 새로운 힘이 틀림없다.
한국 아파트의 다른 숙제는 마당이다. 집의 본디 모습은 건물과 마당의 조합이다 한국에서 촌락 시대의 마당은 노동과 작업의 공간이었다. 그 구성원들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 도시로 이주하면서 기꺼이 그 마당을 버렸다.
한국은 마당을 본 적도, 마당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차세대 구성원이 다수를 점유하는 주거 체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 아파트에서 필요한 것은 발코니 확장을 통한 전용면적 증가가 아니고 다른 사회 구성원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마당의 제공이다.
발췌 옮겨 적음 mr.FUNdamental
책소개
건축과 예술,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누비다
10년 만에 만나는 건축가 서현의 인문적 건축론
『건축을 묻다 - 예술, 건축을 의심하고 건축, 예술을 의심하다』는 건축을 인문학적으로 분석, 감상해 많은 화제를 몰고 왔던『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의 저자 서현이 10년 만에 야심차게 내놓은 인문적 건축론이다. 건축의 본질, 건축의 가치를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건축과 예술 전반에 걸친 깊이 있는 답변을 제시한다.
이 책은 “건축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이를 역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역사를 알기 위해 미술책을 펴고 박물관으로 가라고 말한다. 건축계 인물이나 사건, 건축물 등 많은 것들을 역사라는 텍스트 안에서 다루고 있으며, 그리스 사상가와 로마 시대의 건축 현장은 물론 르네상스 이전과 이후 건축계의 주요 인물과 근ㆍ현대의 인물까지 폭넓은 관점에서 접근한다.
저자는 역사 속 여러 건축의 현장을 방문하며 수많은 물음을 던지지만, 이는 단지 답변을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물음에 답하면 그로부터 또 다른 물음이 파생된다. 이와 같은 흐름을 통해 예술, 기능, 기술, 공간, 사회 등과 같은 건축과 관련된 개념과의 연관성을 살피고, 최종적으로 “건축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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