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un Architecture/fun document

비트루비우스 :: Vitruvius 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뉴어버니즘'때문에 '제인 제이콥스'에 이끌려 읽던 저서들 중에 김혜정씨의 '차이와 차별'을 접하게 되었다.
건축의 존재와 희망 그리고 여성성에 관한 글, 여성 건축가들에 대한 소개와 작품에 관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비트루비우스'에 관한 언급 중 메모해 두었으면 하는 내용들이 있어 중간중간 (중략)하면서 내용을 옮겨보았다.
                                                                                                                                                                                                                mr.FUNdamental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여성은 아이를 잉태한다. 태아는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가 만나 두 사람의 DNA가 결합되어 서로를 닮은 모습으로 태어난다. 태아에겐 심장이 만들어지고 핏줄이 형성되고 골격이 형성된다. 단백질 성분으로 살이 붙고 머리와 손톱이 자라고 눈, 코, 귀 모든 장기가 하나하나 완성되어 9개월간의 자궁 내 발육을 거쳐 세상에 태어난다. 기원전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건물 생성 단계를 여성이 잉태하는 과정으로 비유하며, 영양분을 공급하고, 잘 성장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 비트루비우스의 건물과 잉태의 비유를 통해 건축설계와 건물 축조의 신성함을 다시 생각해 본다. 건물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한다. 건물이 형성되기 위해 하늘이 있고, 대지가 있다. 하늘과 대지사이에는 빛과 바람과 물, 수증기, 풀, 나무 등 자연의 조건 그리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수많은 무기질, 유기질의 영양분이 필요한 것처럼 좋은 건물이 설계되기 위해서는 그 안의 사람, 사람들과의 관계, 이웃, 기능 등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아이를 잉태한 여성은 건강하게, 그 아이가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되어 지구상에서 생명을 다 할 때까지 잘 유지될 수 있는 골격과 기관의 기본을 갖출 수 있도록 골고루 그리고 조화롭게 영양분을 잘 섭취하여야 한다. 그리고 살을 만들기 위한 적절한 영양분을 섭취하여 태내에서부터 건강한 생명력을 부여할 의무와 역할이 있다.

건물이 대지 위에 모습을 드러내어, 지어져서, 수명을 길게 하며, 건강한 건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잉태한 여성처럼 건축가의 여성적 성향이 중요하다. 건가하게 성장하는 조건을 태아부터 갖추어야하는 것처럼 건물이 잘 사용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잉태한 여성처럼 설계 단계부터 준비되고 예측되어야 한다고 비트루비우스는 말하고 있다. 이처럼 건강한 건물이 태어나도록 해야하는 것이 건축가의 의무이다.

그러면서 비트루비우스는 건축가의 역할을 논하면서 여성성에 대해 강조한다. "건물은 인체의 비례를 어떻게 따를 것이며, 어떻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관리하며 병들고 서서히 생명을 잃게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건축에 대해 설명할 때 사람에 주로 비유한다. 주로 건축의 탄생과 성장, 완성의 단계를 설명하고, 남녀의 역할에 대한 비유를 자주 언급한다. 건물을 살아 있는 사람에 비유하고, 생명 탄생의 개념과 직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현대의 대부분 건축가들은 생명 잉태의 신성함처럼 건물 설계 과정을 신성시하지 않는다. 기계처럼 생산하는 설계과정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소외되고 경제성이나 효율성을 앞세운 설계과정에는 건축주들의 사업성만이 중요하게 고려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작품성을 앞세운 소위 작가 건축가들은 대부분 건축의 조형성을 앞세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경험은 무시한다.

비트루비우스가 주장하는 9개월간의 잉태과정에서의 여성적 의무는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미성숙아로 태어나는 사람을 팔푼이라 부른다. 현대 사회는 수많은 팔푼이 건물들이 탄생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속에서 건축의 원점으로 돌아가 비트루비우스를 여성적 시각에서 재해석하여 현대건축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근원적인 시각을 찾아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