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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 Architecture/fun document

김중업 : 어떤 수식어가 좋을지 모르겠다

김중업, 그의 작품중 몇몇은 이미 한국 현대건축의 고전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들은 많은 후진 건축가들의 순례의 대상이 되고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의 작품은 현재성을 잃지 않고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뇌리에서 그의 작품이 망각되지 않도록 방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건축이란 그리 흔한 존재가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이 구축한 무질서 속에서도 고고히 자신을 지키고 있는 귀한 존재만을 건축이라 부릅니다. 그러기에 건축이란 많의 하나정도의 확률밖엔 없고 이를 갈아 맞추는 건축가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을 송두리째 불사르는 이들입니다.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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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회의가 시작되었다. 각 나라으 대표들이 나와서 자국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한국에서는 김중업이 대표로 나가 5분정도 발표했다고 한다. 이후 회의는 각 주제별로 나뉘어져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각 분야별로 발제자가 선정되었고, 건축에서는 코스타(Lucio Costa)가 예비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르 꼬르뷔제는 명예위원으로 줄곳 회의장을 지켰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김중업은 르 꼬르뷔제와 대면하기를 갈망했다. 드디어 그는 산 마르코(San Marco)광장 앞바다에서 페리로 승선하는 르 꼬르뷔제의 모습을 보고 달려갔다. 이때 그에게 던진 질문은 좀 엉뚱하게도 모듈러(Le Modulor)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서툰영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그의 아틀리에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이런 요청에 대해 르 꼬르뷔제의 반응은 한마디로 어이가없다는 것이었다. 훗날 그의 반응을 김중업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귀는 작은 편이었고, 코끼리 눈같이 작은 눈의 소유자는 검고 굵은 안경을 쓰고 뚫어지듯이 응시하고 있지 않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회의가 끝나는 대로 파리의 아뜰리에로 찾아와 보라는 대답이었고, 대안의 회의장에 닿는대로 총총 걸음으로 사라져버렸다. 몇 안되는 대화였지만 나에게는 지나치게 벅찬 일이었고, 그와 가까이 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터질 듯하였다.” 물론 이런 김중업의 감격과는 달리 르 꼬르뷔제는 낯선 땅에서 온 이 이방인에게 별다른 의미없이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중업은 그의 대답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미한 탈출구를 감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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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은 1952년 10월 25일부터 1955년 12월 25일까지 르 꼬르뷔제 사무소에 머물면서 현대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들이 설계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그 이전까지 식민지와 내전으로 인해 세계 현대건축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한국건축이 본격적으로 여기에 뛰어드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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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보다 심각했던 문제는 그가 르꼬르뷔제의 건축을 너무 피상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입소할 당시 르 꼬르뷔제는 무려 30년 이상 자신의 건축개념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1950년대 작품들은 그 이전의 개념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거의 이해될 수 없는 차원의 것이었다. 물론 김중업은 일본에 있으면서 그의 건축을 접했고, 또 해방 후 한국에 귀국해서도 서울대학교에서 르 꼬르뷔제를 강의했지만, 이것만으로 그의 건축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김중업은 사무소 일이 끝난 후에도 사무실의 자료보관소에서 새벽까지 남아 그때까지 르 꼬르뷔제가 수행한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개인적으로 소화하려 하였다. 이것은 하루 20시간이 넘는 건축에의 열중을 요구했다. 김중업은 파리시절 내내 이런 힘겨움을 감내해 나갔다. 그렇지만 이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르 꼬르뷔제의 초기 작품을 이해하는데는 어느정도 한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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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의 건축수첩(Carnet)

르 꼬르뷔제는 자신의 이런 설계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한가지 일이 나에게 던져졌을 때, 나는 그것을 기억속에다 집어넣고 어떤 스켓치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아이디어를 형성시키는 방법이다. 그것은 확실히 독립적인 것이다. 그것은 여러 문제요소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집어 넣을 수 있는 박스이다. 그 다음 그것이 떠다니거나, 부글부글 끓거나, 발효되도록 내버려둔다. 그리고 나서 어느날 내부로부터 자발적인 움직임이 생겨나는데, 그것을 붙잡는다. 연필과 목탄, 그리고 색연필을 갖고와서 종이우에다 쏟아 붇는다. 드디어 아이디어가 나오고 탄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스켓치들은 과거 건축뒤에 숨어있는 의도를 꿰뚫어 보면서, 자신의 기억속에 그들을 세마타로 저장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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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은 또한 르 꼬르뷔제에게서 지향해야 할 올바른 건축철학과 길을 발견하였다. 르 꼬르뷔제가 평생동안 그의 건축작품과 도시계획을 통해 추구한 것은 새로운 기계시대에 걸맞는 건축과 도시의 이념형이었다. 그는 고전의 근저에 놓여있는 불변의 상수를 찾아서, 이것을 새로운 시대상황과 지역적 특수성에 맞도록 자신의 건축언어를 끊임없이 탐구해 나갔다. 그리고 1950년대 북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작업을 수행하면서, 르 꼬르뷔제는 “노스탈직한 감성을 되풀이하여 사용하지 않고도, 새로운 것과 옛것을 결합하여 지역적 아이덴티티를 추구해 나갔다. 이런 탐구를 통해 르 꼬르뷔제는 진부한 표현방법이나 아무런 근거없는 양식화된 국제주의의건물과는 다른, 보다 근원적인 유형을 통해 전통을 해석하는 방법을 보여 주고 있다.” 평생을 통해 르 꼬르뷔제는 자신의 건축언어를 진지하게 탐구하지 않은 채, 시대적 조류에 영합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건추언어를 손쉽게 복사하는 많은 건축가들을 경멸하였다. 이런 르 꼬르뷔제의 자세는 김중업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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