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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 Interest/book

사물 유람 :: 큐레이터를 자극한 사물들

 

 

 

현직 큐레이터의 독특한 안목으로 동시대 시각문화를 탐구하는 에세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물품과 사연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사물 그리고 광고, 간판 등 인간사를 둘러싼 시각이미지를 살펴보고 뜯어본다. 망가진 자동차의 부품으로 인큐베이터를 만든 사연이나 사망자의 온라인 생활을 추도하는 의미를 담은 ‘전자무덤’의 발명처럼 그 자체로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한강의 오리배처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사물들의 미학적?문화적 의외성을 지적하기도 하고, 이 시대 청년들의 생필품이 되어버린 취업용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양식을 디자인적 측면에서 분석하기도 하는, 술술 읽다가 신선한 발상에 여러 번 놀라고 오래 곱씹게 되는 사물 이야기다.

저자 현시원은 독립 큐레이터이자 현대 미술·이미지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no mountain high enough’(2013) ‘잭슨 홍 개인전 13 Balls’(2012) ‘천수마트 2층’(2011)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아가동산, 망상, 웃음, 사과, 할머니 등 아직까지 궁금한 것이 많다. 지금은 동료 안인용과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전시 공간 ‘시청각’(audiovisualpavilion.org)을 열어 이상하고 무모한 일의 끝을 맛보는 중. 저서로 『디자인 극과 극』(2010)이 있다.

 

 

프롤로그: 눈에 밟히는 사물들

1 인공위성 만리장성
꼬마 눈사람
붕어빵
러버콘
거리의 삼색 셔터
커피 전문점의 진동 알림벨
삼색 신호등
과일 행상 천막

2 기타로 오토바이 타자
한강 오리배
국회 의사봉
공원 운동기구
인큐베이터
아이스크림 냉동고
공사장 가림막

3 사랑의 노동
피아노
가정용 재봉틀
빗자루
제주 해녀의 테왁 망사리
유니폼
자기소개서
경찰 마네킹

4 불시착
사직단 안내도
경주시 캐릭터 ‘관이’와 ‘금이’
명절 상차림 배치도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
동물 머리가 실린 간판
비둘기 풍선

5 세계가 변하는 속도
전자무덤
철거되는 옥인아파트
느닷없는 봄꽃
카다피의 초상
큐알코드
비포 앤 애프터 광고

에필로그: 유실물 보관 센터
인용 문헌

 

 

입이 긴 두루미 앞에 놓인 평평한 그릇과 목이 짧은 여우 앞에 놓인 목이 긴 그릇은 대칭적 세계다. 둘은 그릇이라는 사물 때문에 눈앞에 놓인 음식을 그림의 떡으로 마주한다. 타인의 조건을 한계 자체로 만들어버리는 기술은 평범하면서도 지극히 얄미운 것이다. 그릇 디자인의 묘미를 이용해 상대방을 초대해놓고 서로 음식 맛도 못 보게 하는 작은 전쟁은 유치원에서나 일어날 것 같지만 현실에서 자주 벌어진다. (19쪽)

몸동작을 ‘제안’하고 때로는 강력하게 ‘제한’까지 한다는 점에서 운동기구는 고문기구와 닮은 속성을 지녔다. 복부 강화 운동기구를 힘겹게 30회 하며 머리에 피어난 망상이었지만,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다리를 올리다 보니 춘향이 목에 걸었던 칼처럼 운동기구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80쪽)

홈쇼핑 채널을 보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소개하는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들을 어루만지는 호스트들의 잘 관리된 ‘손’이었다.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거나 재킷의 옷매무새를 다듬을 때, 가방을 열어 보일 때 이들의 손놀림은 프로페셔널하다. 상품을 귀하게 여기는 서비스업자의 손이면서 동시에 귀한 물건을 구매하는 꼼꼼한 소비자의 손이다. (116쪽)

집 밖으로 나온 재봉틀은 비상식적인 공장의 어린 소녀들이 타이밍(각성제)을 먹으며 밤낮 일을 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노동의 도구였다. 손과 거의 하나가 된 재봉틀을 반복적으로 움직여 고되게 쌓은 노동의 흔적은 매끈한 새 옷의 외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재봉틀이라는 작은 사물은 지금도 밤낮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돌아간다. 지금 봉제공장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밀집해 있는 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택가 지하에 자리 잡은 곳이 많다. 여전히 누군가 드르륵 재봉틀을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 (121쪽)

‘비포 앤 애프터’가 난무하는 이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포즈의 얼굴 사진도 있다. 파출소 앞에 붙은 지명수배자들의 얼굴 사진이다. 이 무시무시한 전단지에 격자무늬로 놓인 초상 사진은 이들이 악당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파출소 앞에 서서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은 언제나 이런 표정으로 팔도강산을 떠돌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지명수배자들은 아마 비포 앤 애프터 사진만큼이나 현란하고 놀라운 변장술을 사용하며 사람들 틈에 서 있을 것이다. 안면 윤곽의 사회사. 누군가는 얼굴을 마음대로 변주할 수 있고 새로운 세계로 건너간다. 변화는 즐겁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안 변하면 좋겠다. 눈·코·입이 아니라 표정!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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