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서 책팔다가 작가된 엉뚱한 건축가
여기 주목받는 건축가가 있다. 한승재씨(32)는 잘나가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한 지 3년 만에 독립해 2명의 동료와 함께 이름부터 수상한 건축가 집단 ‘푸하하하 프렌즈(FHHH Friends)'를 꾸렸다. 지난해에는 직접 틀을 만들어 하나하나 시멘트 블록을 찍어낸 ‘흙담' 건물로 김해시 건축 대상을 받았다.
한씨는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최근 ‘엄청멍충한'(열린책들)이란 소설집을 냈다. 2011년에 자비로 출판해 덕수궁 돌담길과 홍대 길거리에서 팔았던 책이다. 우연히 그의 책을 사들고 간 출판사 관계자가 제안해 정식출판을 하게 됐다. 등단한 작가는 아니지만 이야기에 매료된 출판사에서 출간을 결정한 것. 그는 "등단이나 출판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며 "열린책들 사옥(미메시스 미술관)이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인데, 이런 건물에 있는 출판사라면 괜찮겠지 싶었다"고 했다.
책에는 버스 단말기에 교통 카드 대신 열쇠를 대고 내렸더니 세상의 속살을 보게 된 대학생(‘검은 산'), 눕지 않으면 척추가 쭈쭈바처럼 녹아내리는 병에 걸린 인류(‘직립 보행자 협회'), 거울 속 분신에게 주도권을 뺏긴 사람(‘사후의 인생') 등이 등장한다. 현실과 환상이 기묘하게 뒤섞이고, 웃기지만 슬픈 뒷맛의 블랙코미디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야근을 마치고 강변북로를 지나가는데 차창 밖으로 검은 산이 보였어요. 헛것을 본 것이겠지만 강렬한 이미지라 그림으로 남겨놨죠. 그런 식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렸다가 설명을 덧붙이고 하면서 소설이 됐어요."
소설은 ‘니안'이란 가상의 인물을 저자로 내세운다. 한씨는 자신을 이야깃거리를 찾아 세계를 탐험 중인 니안의 글들을 엮어 내는 하수인일 뿐이라고 소개하며 의뭉스럽게 ‘멍충이'들의 이야기를 끌어간다.
"멍청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짜증나기는 해도 그래도 선(線)은 지킬 것 같은 이미지인데 ‘멍충이'는 좀 다르잖아요. 구제불능에 대책 없고 한숨밖에 안 나오는 그런 사람이요."
정해진 답만 옳다는 세상에 대고 "별 상관 없잖아"라고 말하고 싶었단다. "여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 홍삼 선물은 해도 되지만 컵케이크를 드리면 개념없다고 하잖아요. 아무리 피곤해도 밖에서는 누우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요."
한씨는 건축과 소설은 극과 극이라 했다. "건축에선 결국 선(線)을 지켜야 하거든요. 움직이는 추가 멈추듯이 건축은 공간과 실용, 디테일 같은 건축의 본질로 수렴하는 과정이고요. 소설은 손을 놓으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발산의 과정 같아요."
다음 작품에 대해 물었다. ‘엄청멍충한'과 마찬가지로 길거리에서 팔았던 ‘걔가 걔고 걔가 걔다'라는 소설집을 준비 중이라 했다. 한씨는 "걔소리를 모아둔 것"이라며 웃었다.
한씨는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영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2015' 전시회에 푸하하하 프렌즈 이름으로 참여했다. 뭘 보여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사무실을 집기 하나까지 통째로 옮겨놨다. 건축가로서 자칭 비공인 소설가로서 바쁜 시기라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유쾌한 또래 동료들이랑 일하지만,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요. 오늘도 반차 쓰고 나온 거예요. 건축사무소 동료들이 저보고 전업 작가 운운하면 가만히 안두겠다고 협박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