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쪽방촌 1차 리모델링사업
임시주거시설
가난하고 외로워야 노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우리가 노인이라고 지칭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가난하고 외로우면 노인이다. 늙어서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잔인함과 인생의 배반이 집약되면 인간은 금세 노인이 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노화현상에 자비가 없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나이가 들면 신이 새로운 삶으로 나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보안관 에드 톰 벨이 낮게 읊조리는 대사는 관객들을 무겁게 내리 누른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구원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군중이 노래하듯 “신은 우리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우리는 기적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몇 번의 기적과 몇 번의 구원이 있는 삶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적도 없고, 출구도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 삶은 우리들에게 인간성을 증명할 기회를 그다지 많이 내어주지 않는다. 망가진 삶은 금세 노인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다시 한번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돌아가면, 영화 후반부에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하는 보완관 에드 톰 벨이 이렇게 중얼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나라는 너무 힘들어.” 그의 말이 맞다. 이 나라는 너무 힘들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쪽방촌을 전전한다. 하루 방값 7000원. 장기거주자에게는 5000원인 쪽방촌에는 소외되고 기적 없는 삶들이 모여 있다. 어둡고 습하고 답답하다. 출구 없는 미로 속에 갇힌 쪽방과 쪽방의 이어짐은 그곳에 발을 디딘 사람을 금세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곳에 서울시가 발을 디뎠다. 총 441개의 쪽방이 모여 있는 서울의 대표적 쪽방촌 밀집지역인 영등포역 주변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건물주의 동의를 얻어 쪽방가구마다 소방과 전기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 만일의 사고를 방지하고 난방 및 단열시설 개선, 공동화장실 및 주방 등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단계적으로 사업을 실시해 2014년까지 리모델링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 역사적인 공공사업의 1차 프로젝트가 지난 1월 마무리됐다. 작년 6월 박원순 서울시장과 영등포구청장, 광야교회 목사, 건물주 대표들이 협약을 한 후 본격적인 95가구 쪽방촌 대상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쪽방 임대료는 올리지 않기로 했다.
건축설계를 맡은 위진복 UIA건축사사무소장은 타임스퀘어 복합 상업단지와 영등포역 롯데백화점 및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선 화려한 도시의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듯한 쪽방촌을 마주하며 사업 콘셉트를 정리했다.
위 소장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배려 계층에게 최소한의 시민 주거권을 돌려주는 것”이라며 “도시 재생의 시작이자 계층 간 단절을 극복하는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위 소장은 해당 프로젝트를 2개의 영역으로 구분했다. 하나는 임시 거주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커뮤니티 센터다. 17개의 20피트 및 3개의 40피트 컨테이너를 쌓아 3층 규모의 독특한 디자인이 이렇게 탄생했다. 단순히 미관을 위한 디자인같지만 사실은 주거민의 주거복지 향상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이다.
13개의 20피트 컨테이너가 어우러진 거주영역은 최대한의 공용공간을 형성하기 위해 엇갈린 반복적 쌓기를 통해 사이사이에 이웃하는 공간과 개인 테라스 및 공용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20피트 컨테이너는 3개 작은방의 기본 모듈이며 한쪽 벽면에 선반과 전기패널 난방이 설치돼 있다. 열손실 최소화를 위해 이중 복층 유리창을 설치했고, 기존 컨테이너의 열리는 문 쪽에 추후 해체를 위해 한쪽 문만 열어 창문을 만들고 90도로 열린 상태로 고정시켰다.
커뮤니티 센터는 1층에 샤워부스와 공동주방, 창고, 사무실이 있다. 4개의 20피트 컨테이너와 2층에 3개의 40피트 컨테이너로 공간이 완성됐다. 상부 40피트 컨테이너는 아래 20피트 끝 쪽에 앉혀져 있어 다른 한 편에 6m의 캔틸레버 공간을 만들고 있다. 시공은 서울시 공사대행을 맡은 SH공사가 맡았다.
중산층 70%를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부디 나머지 30%의 취약계층에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길 기대한다. 삶은 평균을 내어 보편적으로 행복할 수 없다. 소외되거나 내몰린 삶을 최소화한 정책과 사회의 노인을 껴안은 도시가 2013년부터 새로이 숨쉬기를 기대한다. 영등포동 422-63번지가 그 시작이다.
위치: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411-28번지 일대
순공사비: 3억8000만원
규모: 지상 3층, 8.07m
시서내용: 36개 1.5평 거주공간, 커뮤니티 센터 및 공용 샤워실, 조리실, 화장실, 관리실, 창고
설계: UIA(위진복 소장)
시공: GS CnT
건축주: 서울시
준공: 2013년 1월
출처 : 건설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