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un Architecture/fun news

“터질 것이 터졌다 아파트 위주 건설정책이 건축업계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Mr.fundamental 2013. 1. 16. 00:43

 

 

이광만 한국건축가협회장이 말하는 공간건축 부도 사태

 

혹한 속 어느 곳보다 추운 곳이 있다. 건설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꽁꽁 얼어붙은 건축업계이다. 건축업계에 해가 바뀌자마자 매서운 뉴스가 터졌다. 국내 대표적 건축설계사무소인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공간건축)가 지난 1월 2일 최종 부도처리됐다. 업계에선 “올 것이 왔다”는 자조적인 분위기다. 연쇄 도산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 중견 건설회사와 대형 건축설계사무소가 포함된 ‘부도리스트’가 돈다는 얘기도 있다.
건축설계업계의 위기는 어느 정도인지, 타개책은 없는지 한국건축가협회 이광만 회장(간삼건축 대표)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중구 신당동의 간삼건축 사옥에서 1월 9일 만난 이 회장은 프레젠테이션에 익숙한 건축가답게 미리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놓은 듯 태블릿PC를 꺼내놓고 문제점부터 대책까지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을 했다.

“지금이 최악의 위기”

이 회장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입을 열었다. “2012년 건축사무소당 평균 계약 실적이 연 3건에 불과합니다. 공간건축이 부도가 나면서 건축계의 위기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 뿐 2~3년 전부터 예견됐던 상황입니다.”
국내 건축설계사무소는 1만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인 사무소도 많은데다, 폐업 때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정확한 집계가 어렵다고 한다. 현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건축사는 1만여명이다. 이들이 개업했다고 가정, 대략 1만여개의 건축사무소가 있다고 본다.
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 새 이 중 2000여곳이 문을 닫았다는 말이 돌고 있다. 국내 건축사무소는 대형업체와 아틀리에 형식의 1인 사무소로 양극화돼 있다. 대형업체라고 하면 직원 100명 이상 규모로, 현재 30위권 이내의 업체가 이에 속한다. 그중 ‘톱10’은 직원 수 500명 이상으로 세계적 수준의 규모이다. 공간건축은 매출 기준으로 2011년 업계 6위권이었다. 한때 500명이 넘는 규모를 자랑했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현재 120여명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비정상적인 양극화 구조가 건축업계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파트 중심의 주택정책을 20년 전에 멈췄어야 했습니다. 경기침체 탓도 크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잘못된 주택정책입니다. 그 부작용이 세계에 유례없는 아파트 공화국을 만들고 결국 건축업계를 이원화시키고 무너지게 만든 것입니다.”

잘못된 주택정책이 양극화 불렀다

이 회장이 지적한 문제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아파트 위주의 부동산 정책 탓에 대형건설 위주로 산업이 흘러가면서 건축의 주도권을 대형 건설회사가 쥐게 됐다. 건축설계사무소는 대기업 건설사 밑에서 저가의 설계비를 받고 일을 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게다가 아파트 건설이나 공공건축에 참여하려면 직원 수가 최소한 100명 이상이 돼야 하다 보니 무리하게 몸집을 불렸다. 대형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대형 업체와 한두 명이 운영하는 소형 사무소로 극단적인 양극화 구조가 되고, 1%도 안 되는 대형업체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99%의 소형 사무소들은 근근이 먹고살거나 고사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됐다. 한창 건설 붐이 일면서 대형업체가 많아지고 공급이 넘치다 보니 과열경쟁으로 치달으면서 덤핑수주로 이어졌다. 인력은 많아지고 수익성은 낮아진 상태에서 건설경기가 침체되자 대형건설에 집중해온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해외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뛰어든 해외사업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공간건축도 20~30년 전부터 해외시장에 진출한 1세대이다. 리비아·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중동 시장에 나갔으나, 용역 대금을 상당수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건축 부문의 턴키방식(설계·시공 일괄입찰) 공사도 비정상적인 시장구조를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이 회장은 “서울시청이나 동대문디자인공원 등이 턴키방식의 부작용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건축설계는 건축주와 시공자의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품질관리와 감시를 해야 하는데 건설회사가 전권을 쥐고 있고 건축사무소는 하도자 위치에 있다 보니 불공정거래도 감수해야 하고 공사진행에 있어서도 건설회사의 입맛대로 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입장에선 일괄적으로 맡겨 버리면 편한 겁니다. 서울시청 공사를 계기로 서울시에선 앞으로 턴키방식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학습효과가 있었던 거죠. 앞으로 그런 분위기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공간건축의 부도사태도 턴키방식으로 진행된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개발사업(파이시티)에서 설계비용을 받지 못한 것이 결정적 원인 중 하나였다. 결국 정부 주도의 주택공급 정책과 잘못된 발주방식, 그로 인한 불공정 거래관행, 업계의 몸집불리기가 악순환을 초래하고 병을 키운 상태에서 건설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위기가 기회

이 회장은 상처가 곪아 터진 만큼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대안은 뭘까. 이 회장은 건축설계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축설계는 지식서비스 산업입니다. 제조업에 속하는 건설과는 다른 산업의 틀로 인식하고 진흥시켜야 합니다. 현재 소관부처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건축사협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건축가협회는 국토해양부로 나눠져 있습니다. 건축설계를 총괄해서 지원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인 사무소의 경우 동네 구멍가게나 다름없이 정부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인 사무소라고 하더라도 그 밑에는 인테리어·목수·미장 등 여러 분야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5~10인의 중소기업이라고 이해하고 접근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 회장은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최저설계비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도 의료수가가 있듯이 설계비도 최소한 정해진 수준은 보장해줘야 합니다. 하물며 부동산 중개료도 최저보수가 정해져 있는데 건축설계는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고 해서 최저보수비를 폐지시켜버렸습니다. 시장이 악화되면서 덤핑경쟁이 시작되다 보니 서비스 질이 낮아지고 품질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죠. 결국 피해는 소비자가 보는 겁니다. 자생할 때까지만이라도 최저보수비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회장은 “저가 수주를 하면서 서비스를 제대로 못해 주고 스스로 경쟁력을 낮춰왔다”면서 “건축가들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속해 있는 간삼건축의 경우는 위기관리를 잘한 경우이다. 간삼건축은 업계 순위 5위권으로 아쿠아리움·바이오산업 등 전문적인 영역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수엑스포장에 선보인 아쿠아리움에 이어 아시아 최대 규모인 제주 아쿠아플라넷, 내년 개장 목표인 일산 아쿠아플라넷 설계를 맡으면서 세계적 강자로 떠올랐다. 현재 중국 진출도 앞두고 있다.
이 회장은 “간삼건축의 30년 성장 철학은 간단합니다. 완성도를 높여 고객을 다시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간삼의 경우 고객의 65%가 다시 찾습니다. 아쿠아리움도 처음부터 특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완성도를 높이니 고객이 계속 찾고, 계속 일을 맡다 보니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겁니다.”

대형은 해외, 중소형은 리모델링이 돌파구

이 회장은 간삼건축의 경우가 위기에 처한 건축설계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력을 높이고 특화된 기술로 해외 시장을 노려야 한다는 것이다.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등에서 한국의 인기가 높습니다. 그들은 건축설계를 플랜트로 봅니다. 단지 건물을 지어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는 콘텐츠까지 통째로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삼에서 진행한 몽골 질병연구소의 경우도 설계부터 운영·교육까지 통째로 의뢰했습니다. 건축설계가 건축기자재부터 인력까지 수출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간삼이 진행한 베트남 주상복합의 경우도 TV까지 설치해줬습니다.”
이 회장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만큼 별도의 산업차원에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설의 경우는 해외 진출 때 정부 지원이 많지만 설계 쪽은 그동안 맨손으로 시장을 개척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대형 사무소들에는 해외 시장을 공략하게 도와주고, 대형 위주의 건설정책을 전환해 중소형 사무소를 위한 새로운 건축시장을 열어줘야 무너진 건축업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중소형 사무소의 경우 리모델링시장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위주의 잘못된 주택정책을 바로잡고 그동안 짓느라고 급급했던 것을 이젠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고치고 개선해야 합니다. 리모델링으로도 줄줄이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일자리 창출도 되고 삶의 질도 높이고 도시를 재생시키는 일입니다. 골목이 좋아지면 골목상권도 좋아지고 건축가도 일이 많이 생기겠죠. 다 같이 잘살고 행복해지는 일인데 정부가 나서줘야죠.”
이 회장은 그동안 소외돼 왔던 건축설계 영역에 최소한 제조업만큼이라도 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불공정거래로 왜곡되고 양극화된 시장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면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건축문화야말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아니겠느냐면서 반문했다. “삶을 바꾸려면 그릇이 바뀌어야 합니다. 건축설계야말로 우리 삶을 바꾸고 행복하게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